첫 줄
-심보선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그것이 써진다면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나머지 반으로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으리라.
-새해, 나의 결단으로부터 시작되는 ‘첫 줄’
지금껏 읽었던 책의 첫줄 중 내 가슴에 가장 큰 파문을 울렸던 문장은 무엇이었던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루카치, 『소설의 이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가와바다 야스나리, 『설국』)가 언뜻 떠오른다.
남의 글도 그렇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 ‘나만의 첫줄’은 너무 소중하다. 머릿속에 뒤얽히는 생각을 이런저런 문장으로 웅얼거리다 몇날을 지새우다 보면 “어떤 힘이 그를 잡아당기는 것일까?”(「콩깍지 혹은 집」), “하늘이 삼십몇 도의 더위 지상에 내려보냈을 때”(「음악」) 같은 첫줄이 거짓말같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때의 기분은 “죽음의 반만을 고심”해도 될 만큼 좋았다. 뒷 문장은 술술 풀려나갔다. 시작은 반이 아니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모든 것이었다.
창작만인가. 우리 삶의 모든 국면이 그렇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묵은 해가 가고 새해도 벌써 열흘이 우리 손에서 빠져나갔다. 사람마다 한 해의 목표와 꿈을 세워놓았을 것이다. 버리지 못했던 옛 습관을 버리는 결의인가. 안으로만 되뇌이던 목소리가 바깥으로 방향을 트는 고백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수 십 년 만에 마련해보는 내 집을 향한 설렘인가.
그러나 거창한 목표보다 더 요긴한 것은 첫줄이 아닐까? “진보(進步)는 일보(一步)다.”라는 벤야민의 말처럼 매일의 삶을 첫줄처럼 사는 것이다. 새로운 시간을 맞는 개인들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외적 여건이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나의 존재 안으로부터 누에가 실을 뽑듯이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 24시간으로 쪼개진 시간이 아니라 나의 결단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시간이다. 그 ‘첫 줄’이 시작되어야 할 시기이다.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얼음의 첫줄”, ‘나’만의 첫줄을 두근거리며 써나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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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