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대형마트 가는 게 지겨워 자동차 핸들을 재래시장으로 돌렸다. 시장 입구부터 오리며 닭, 강아지에 토끼까지 죽 늘여놓고 새 주인을 기다린다. 오리하고 토끼하고 전혀 일관성은 없어 보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여기는 왁자지껄 오일장이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귀를 막고 있길래 따라 했더니 뻥~ 하고 하얀 연기와 함께 구수한 뻥튀기가 수북 쌓인다. 돈 주고 사먹는 사람보다 그냥 손에 한 웅큼씩 주워가는 사람이 더 많다. 공짜 손님도 당당하고 뻥튀기 할아버지도 개의치 않는다.
저기 사람이 몰려 있기에 뭔가 하고 가보니 역시 뜨끈뜨끈한 어묵에 노릇노릇 잘 구워진 호떡을 팔고 있었다. 할머니와 따님으로 보이는 주인은 연신 새 어묵과 육수를 채우지만 밀려오는 손님을 제때 맞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는 그저 뜨끈한 어묵 국물이 제격이다.
아들 녀석도 간장을 따로 덜어먹을 생각은 않고 사람들처럼 커다란 간장 통에 어묵을 무심히 적신다. 나름 깔끔을 떠는 녀석인데 전통시장엘 왔으니 시장 방식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옆으로 작은 몸집에 비해 제법 커 보이는 짐을 든 할머니가 비집고 들어오신다. 주인한테 얼마냐고 가격부터 먼저 물으시는 걸 보니 장볼 게 더 있으신가 보다. 바쁜 주인 대신 옆에 있던 아들 녀석이 “할머니, 세 개 천원요.” 한다. 못 들으셨던지 다시 한 번 얼마냐고 목소리를 높이신다. 보기에도 푹 익어 보이는 어묵을 얼른 할머니 손에 쥐여드리며 와이프는 천원에 세 개라고 말씀드린다.
내 할머니 보는 듯해서 와이프한테 눈을 찡끗하자 자기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할머니 어묵 값을 같이 낸다. 주인도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눈짓으로 할머니 드시는 걸 잘 살펴보겠단다. 어묵은 충분히 먹었던지 아들은 옆에 있는 호떡에 관심을 보인다. 사는 김에 할머니 것도 하나 사서 어묵 국물과 함께 할머니 앞에다 놓아드렸다.
“아이고, 젊은 새댁이 고맙게도…”하시는 소리를 뒤로 하고 조용히 빠져 나왔다. 새댁이라는 표현은 좀 심하지 않나 싶어 와이프 얼굴을 힐끗 쳐다본다. 나도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가 비운 자리에 얼른 사람들로 채워지는 걸 보니 오늘은 어묵 사장님 주머니가 가장 두툼해질 것 같다. ‘아, 우리 외할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편안하게 잘 계실까?’
농경시대에는 삶의 경험이 많고 그만큼 지혜가 많은 어른이 대접을 받았다. 젊은 사람들은 지혜와 권위를 가진 그들을 어른으로 믿고 따랐다. 씨는 언제 뿌리고 수확은 언제 할 지에서 갓난아이를 받아내거나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치룰 지에 이르기까지, 마을 대소사를 그들과 상의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마을 어르신의 권위와 신뢰는 단단해졌다.
그랬던 우리 어르신 문화가 젊은이들 손에 스마트폰이 하나씩 쥐어지자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자녀의 정보 습득과 활용 능력이 부모나 어르신들을 뛰어넘게 되자 어른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게 된 것이다. 어른들로부터 경험이나 인생의 지혜가 자연스레 전달되던 시대와 달리, 스마트폰과 SNS 시대로 상징되는 오늘날은 기본적으로 개인화에 최적화된 사회다. 어른이나 부모가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 그들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은 현격히 떨어질지 몰라도 젊은이들은 마을 어르신들보다 장마는 언제 시작되고 얼마나 지속될 지, 올해 병충해는 어떻게 대비할 지 더 잘 알고 있다. 고작 손에 쥔 스마트폰 몇 번 두드리기만 했는데 말이다.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 필요하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다운받을 수 있으니 굳이 소유할 필요도 없다. “다른 친구들도 다 핸드폰 있단 말이야, 나도 사줘” 떼쓰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쥐어줄 때는 몰랐을 거다. 자신들은 철저히 무기력해지고 자기 자식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세상을 ‘사주었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튼 아들 녀석한테는 핸드폰을 버티고 버티다 사줄 생각이다. 차라리 여기 재래시장처럼 사람 사는 데는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