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은 금속 중에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불상은 대체로 황금색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금인(金人)이라 하고 부처님을 모신 건물을 금당(金堂)이라고 한다. 이 금당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초기까지 문헌에 많이 언급되다가 그 이후부터 어떤 불상을 본존불로 모시는가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 했다. 즉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봉안하였을 경우에는 대웅전,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봉안하였을 경우에는 미타전이나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 비로자나불을 봉안하면 대적광전이나 화엄전 또는 비로전이라고 한다. 황룡사지는 창건 당시에는 금당이 하나뿐이었으나 1차 중건기 이후 중금당 좌우로 동금당과 서금당이 있는 3금당이었던 것으로 발굴조사 결과 밝혀졌다. 중금당에는 대석 위에 장육존상을 비롯한 거대한 삼존불과 그 좌우로 각각 5구씩 10대 제자상이 안치되고 그 바깥쪽으로는 신장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황룡사에 삼존불이 이루어지고 난 후 그동안 동축사(東竺寺)에 임시로 모시고 있던 아소카왕의 삼존불 역시 이곳 황룡사로 옮겨 안치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동서 금당 중 어느 한 곳에 모시고 나머지 한 금당에는 불화를 걸어 모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경(金剛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 凡所有像(범소유상) 무릇 상이 있는 바 皆是虛妄(개시허망) 모두 다 허망하며 若見諸像非像(약견제상비상) 만약 모든 상을 상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면 卽見如來(즉견여래) 곧 여래를 볼 수 있다. 필자는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황룡사지를 찾는다. 북풍이 몰아치는 오늘 같은 날이면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매서운 바람 속에도 이 자리에 서면 세상사를 잊을 수 있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웅장한 모습의 옛 가람을 볼 수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금당지이다. 장륙존상을 중심으로 양 협시보살과 그 바깥쪽으로 5구씩 10대 제자상과 신장상이 필자를 압도한다. 경주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에서는 황룡사를 복원하여 관광자원화 하겠다고 하나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다수가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충분한 고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복원을 함으로서 유적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당의 초석 위에 누구나 상상의 나래를 펴서 자기 나름의 멋진 전각을 짓고 그 안에 불보살상과 신장상을 모시는 일이 복원 못지않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약견제상비상(若見諸像非像)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고 했다. 금당을 복원하고 초석과 좌대 위에 굳이 불상과 신장상을 세우지 않아야 진정 여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시작되었다. 십간(十干) 중 ‘정(丁)’은 ‘붉은색’을, 십이지(十二支)에서 ‘유(酉)’는 ‘닭’을 뜻한다. 올해가 ‘붉은 닭의 해’이다. 붉은 닭은 액운을 쫓고 행운을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을 지배하던 악귀가 물러가고 새벽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올해는 행운이 찾아올 것이다. 또 민간에서는 닭의 ‘볏’은 ‘벼슬’과 발음이 비슷하여 닭의 해에는 관운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정유년 올 한해는 경주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희망찬 한해가 될 것이다. 어디에서인가 읽은 다음 글귀가 생각난다. “희망을 가진 자 앞에서 인생은 마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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