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서정춘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종소리를 들으며
종소리처럼 섬세하고 따사로운 손길이 있을까? 먹먹하게 울리다가 은은히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그 소리를 들으면 들뜬 감정도 격한 감정도 다소곳해진다. 때로는 사물의 살갗에 스며드는 우아함이 있는가 하면, 뭇 생명들을 숙연하게 명상에 잠기게 한다. 물고기도 새도 짐승도 인간도 다 고개를 내밀어 그 소리를 받아먹는다. 식물들도 그 소리를 먹고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운다. 저 날렵하게 뻗은 연봉(連峰)들도 두둥실 춤을 춘다.
종소리도 그렇지만 특히 소리 뒤에 남은 소리의 여운은 사물의 심장을 건드리며 경건하게까지 한다. 들리지 않는데도 가슴에 계속 저며오니, 그 소리는 닫혀진 둥근 괄호를 다시 열게 하고, 꼭 여미게 하니 연 괄호를 다시 닫는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 한없이 커지면서, 줄어들기도 하는 신축성이 있는 투명한 항아리가 된다. 부산해지는 연말, 우리나라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생각에 잠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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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