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저병원성 AI 검출로 감염의 위협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역 최대 닭 사육 농장인 희망농원에는 주민들의 비협조로 감염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방역을 거치지 않은 주민들이 희망농원을 드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19일 강동면 국당리에서 채취한 철새 배설물에서 조류 저병원성 AI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27일 밝혔다. 국당리 일대는 포항시와 경계 지점으로 형산강 상수원 보호구역과 인접한 곳이다. 주변 3km에는 양계 농가가 없다. 하지만 반경 10km 안에는 희망농원을 비롯해 닭 70여 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경주시는 AI 방역을 위해 주변 지역에 대해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주변 3km 위험지역은 우선 방역하고 있으며 주변 10km 지역은 예찰을 강화하고 농가 이동 금지도 취하고 있다”면서 “희망농원은 모든 차량에 대해 소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뒤인 지난 28일. 다행히 강동면 국당리에서 검출된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저병원성으로 밝혀져 인근 농가와 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27일 이전 희망농원의 방역에는 허점이 있었다. 희망농원 입구에는 AI 방지를 위한 소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희망농원을 드나드는 모든 차량은 차량 소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몇몇 차량은 소독하지 않고 옆길로 지나쳐 버렸다. 방역을 맡은 주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량을 보며 중얼거린다. “저 차량은 닭을 키우지 않는 주민 차량이야. 차에 소독약이 묻는 게 싫다고 항의하고 싫으면 희망농원을 떠나라고 말하는데 머라고 할 수 없어”라며 외면해 버린다. 양계업자들은 이제 희망농원에서 을의 처지가 되었다. 희망촌 정착기에는 대부분 주민이 양계업에 종사했다. 시간이 흘러 희망촌 160여 가구 중 20여 가구만이 양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마저도 대부분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들이다. 경주시 방역 담당자도 주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강제할 수 없는 입장이다. AI가 발생하면 모든 차량에 대해 소독을 시행하지만 경주는 아직 비발생 지역이라 축산 관련 차량만 소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당자는 “주민들은 이동 제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소독할 수 없다. 주민을 상대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천북면 노당리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검출돼서야 희망농원은 방역을 위해 옆 샛길을 가로막고 전면 방역을 실시했다. 희망농원은 희망촌 내 집단으로 양계를 사육하는 농가 공동체다. 희망농원에는 현재 전체 160여 가구 중에서 23가구가 양계를 사육하고 있으며 이들이 키우고 있는 양계는 현재 46만 마리 정도다. 시에 따르면 희망촌은 1961년 한센인들의 집단 정착촌으로 처음 동천에 세워졌다가 이후 보문단지를 거쳐 1970년대 현재 희망촌으로 옮겨왔다. 희망촌은 초창기 양계에 종사하던 한센인 1세대는 노환 등으로 양계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거의 없으며 2세대들과 외지에서 들어온 농가들이 양계업을 이어오고 있다. 희망촌이 지역 최대의 양계단지임에도 양계 환경은 열악하다. 70년대 지어진 대부분 오래된 건물에다 집단으로 몰려있고 거기에 무허가로 지어진 농장이 다수 있어 AI가 발병하면 속수무책이다. 양계업에 종사하는 주민은 “희망농원 자체가 오래돼 사실 각종 질병에 취약한 곳이다”면서 “하지만 다른 곳에서 양계업을 할 수 없기에 떠날 수도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양계업자들이 희망촌 주민들과의 갈등과 질병 취약한 환경에서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양계 허가 때문이다. 양계업에 종사하는 이 모 씨는 “이곳을 떠나 한적한 곳에 땅을 구입해도 각종 민원과 규제로 허가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면서 “열악한 환경이지만 신규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에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2014년 희망농원에 AI 발병으로 희망촌 이주가 물 위로 떠올랐다. 희망촌 주민들은 보상해주면 떠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였고 주민들은 이주대책위를 결성해 이주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주는 과도한 이주비용과 이주를 노린 업자들의 난립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희망촌 주민은 “처음에는 이주를 위해 대책위도 만드는 등 이주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실상 이주를 노린 업자들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면서 “과도한 이주 비용 등을 감당할 곳이 없어 이주는 물 건너 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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