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즈음,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생 몇 명을 만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혈기왕성했고, 그러니 무서울 것도 없었으며, 그만큼 맹목적이고 어설펐던 그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이라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때는 상상치도 못했을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어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리고 있자니 묘한 기분마저 든다. 다 함께 술잔을 들다가도 어느 누가 “야, 너거들 그거 기억하나…?” 하고 운을 떼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 기억에 동참하려는 모습들이라니, 겉은 배불뚝이에 얼굴 주름도 제법 자리를 잡았지만 속은 아직도 십대(代)라 해도 좋을 성싶다. 옛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이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잠시 화장실엘 다녀왔더니 어째 분위가가 이상하다. 얼굴은 부잣집 도련님마냥 하얗고 학창시절 내내 조용해 ‘행주’라 불리던 녀석이 작정을 하고 반장 녀석한테 따진다.
“니가 그때 무가비 쎔한테 이르지만 않았어도 팔용이가 울며 내빼지는 않았을 거 아이가!” 단호한 목소리다.
이에 질세라 반장도 “내가 똑똑히 안 봤나. 팔용이 입가에 뭐가 묻어있었다 카이”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번은 우리 반에 누군가 장난으로 남의 도시락을 훔쳐 먹은 사건이 있었다. 급기야 체육시간에 혼자 교실을 지키고 있던 (코 옆에 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얻은 별명이) 팔용이가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본인은 극구 아니라고 했지만 빈 도시락을 들고 있던 놈들이 작정을 하고 녀석을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등장하신 (당시 유명한 프로 권투선수 무가비를 닮은)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윽박지르자 반장은 엉겁결에 팔용이를 범인으로 지목해 버린다. 나중에 범인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팔용이가 고함을 지르며 교실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끝이 난 해프닝이었다.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이야기였지만 쏘아대는 행주나 추궁당하는 반장이나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볍게 시작한 추억 되살리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구석자리에 있던 팔용이가 조용히 거든다.
“아이다, 행주야. 니가 잘몬 알고 있다. 내가 뛰쳐나간 거는 화장실이 급해서였다. 억울해서 그런 거 아이다”
그러자 행주는 “그때 니 울면서 나갔자나? 니 와 그짓말 하노?” 하니까 팔용이는 씨익 웃으며 “나는 누가 범인인지 벌써 알고 있었다. 하도 불쌍해서 일부로 모린 척 한기다. 니는 와? 내가 우는 줄 알았나? 화장실은 급한데 다들 자꾸 막으니까 내가 머라 머라 하면서 막 뛰나간 걸 니는 우는 줄 알았는가베” 하고 히히댄다.
우리는 왜 이처럼 같은 일을 겪고도 다르게 기억할까? 미국의 울릭 나이서(Ulric Neisser) 박사는 의미있는 실험을 했다.
1986년 1월, 미국에서는 우주왕복 비행선 챌린저호가 폭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 다음 날 106명의 학생들에게 폭발사건을 기록하게 했다. 일곱 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대참사였기에 학생들은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런데 2년 반이 지난 뒤 당시 기억을 다시 물어보았더니, 그들 중 불과 10%만이 정확하게 기억을 하더란다. 25%는 전혀 엉뚱한 기억을 떠올리는 등 결과적으로 학생 90%의 기억이 사실과 달랐다고 한다. 3년도 채 안된 기억인데도 말이다. 사람은 실제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을 기억하는 등 심각한 ‘기억 왜곡’을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영국에서는 16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어린시절 기억을 묻고 그 학생의 부모나 형제에게 실제 그랬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더니, 다섯 중 한 명꼴로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기억하더란다.
기억은 비디오테이프처럼 되돌려서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머릿속에 있는 경험과 정보의 조각들이 모여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억은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심지어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위해서 기억까지 왜곡한다고 말한다. 없던 일을 기억한다고 거짓기억 증후군(false memory syndrome)이라고도 한다.
요즘 ‘파란 기와집’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기억은커녕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조차 없었던 일이라고 딱 잡아떼니 참 난처하다. 새해에는 좀 달라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