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레너드 코언이 되고 싶다.” 이 말은 1990년대를 수놓은 얼터너티브록 밴드 너바나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이 남긴 말이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각종 해외 문화 개방과 함께 국내에 유입된 사물과 사상들이 뒤엉켜서 부유함 속에 두려움이 가려졌던 호황의 시기였다. 국민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허용해주었던 자비로운 사회 분위기를 회상하는 많은 사람들이 80, 90년대를 순수의 시대였다고 말하지만, 정치적으로 많은 오류 역시 범람하던 시기였다. 영화와 음악계도 장르의 특별한 구분 없이 웬만한 작품들이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고 작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에로와 작가주의가, 그리고 발라드와 트로트가 공존했던 시대.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변화되던 극점에 있었던 그 때, 오랜 세월을 사람들과 함께 해왔던 LP는 CD와 공존하며 더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절에, 술보다 더 진한 무엇인가를 갈구하며 거리를 헤매던 설익은 청춘들. 그들의 목구멍에 가득 찬 우울을 마음으로 위로해 주던 노래가 있었다. ‘내가 당신 곁에 있어요. I’m Your Man’ 우수어린 낮은 목소리가 우리 모두에게 던져 주었던 그 뭉클한 위로의 한마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레너드 코언이었다. 국내에서는 1988년 발매된 8집 앨범의 수록곡 가운데 ‘I’m Your Man’의 히트로 크게 알려진 음악계의 진정한 음유시인 레너드 코언은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음악가이다. 만약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밥 딜런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음악을 어우르는 노랫말처럼 아름다운 문학은 없다’는 스웨덴 한림원 원로들의 의지가 명백했다면, 사람들은 이 우울한 예술가의 부고 대신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먼저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듯 코언과 딜런의 상관관계는 유명했었다. 코언은 1965년 딜런이 전자 기타를 들고 ‘Mr. Tambourine Man’을 불러 포크음악팬들을 경악케 만들었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을 통해 1967년 음악계에 데뷔했고, 딜런과 함께 영미권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뮤지션으로 여러 문학상에 추천되기도 했다. 실제 2006년 캐나다에서는 코언에게 노벨 문학상을 받게 하자는 공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2007년 딜런에게 예술상을 수여했던 스페인 최고 권위의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은 2011년 코언에게 ‘최우수 문학상’을 수여하며 그가 진정한 문학인임을 인증해 주었다. 이 밖에도 코언은 2003년 캐나다 정부로부터 명예 훈장을 받았고, 2008년에는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10년 제 52회 그래미상 평생 공로상까지 수상했었다. 1934년 캐나다 퀘벡 주의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레너드 코언의 ‘코언(Cohen)’이 히브리어로 ‘성직자’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충실한 폴란드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6년 첫 시집 를 내면서 시인으로 문학계에 등단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성공한 작가의 길을 걷던 코언은 앤디 워홀과 함께 ‘Factory’의 멤버로 작곡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코언이 유명 가수 주디 콜린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어 주었던 곡 ‘Suzanne’는 그를 가수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주디 콜린스는 코언에게 가수 데뷔를 제안했지만, 그는 자신이 절대 가수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극구 거부했다. 이에 주디 콜린스는 지미 헨드릭스가 노래를 시작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 레너드 코언의 1집 앨범 [Songs Of Leonard Cohen](1967)은 미국과 영국에서 컬트 현상을 일으키며 단숨에 열광적인 팬층을 형성했다. 1960년대에 레너드 코언은 집필 활동을 위해 걸프 연안에 있는 그리스의 작은 섬 히드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시집 와 소설 ’, 등을 쓰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진행했다. 아름다운 히드라 섬에서 그는 생애 가장 절망적인 순간과 가장 행복한 순간을 동시에 맛보기도 했다. 그의 1집 앨범에 수록된 곡 ’So Long, Marianne’의 주인공인 마리안느 일레인은 코언의 여자 친구를 빼앗아간 유명한 극작가의 부인이었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가난한 작가와 그 정적의 버림받은 아내로 남겨진 두 사람은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처럼 지중해의 작은 섬에서 서로 사랑을 하고 그렇게 몇 년을 함께 보냈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지만, 지난 7월 마리안느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날 무렵 코언이 그녀에게 쓴 그리움의 편지가 알려지면서 “나도 곧 당신을 따라 갈 것 같소.”라는 대목이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었다. 마리안느가 창가에 앉은 작은 새를 보고 코언에게 영감을 준 유명한 노래 ‘Bird On A Wire’는 그의 두 번째 앨범 [Songs From A Room(1969)]에 타이틀곡으로 실렸으며, 멜 깁슨이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2016년 11월 11일 코언은 향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온 세상이 폭발할 것처럼 미쳐 돌아가는 거대한 아노미 현상 속에서, 지난 세기말에 인류가 느껴야 했던 공포심을 지금 우리는 복습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존재하는 한 이 끔찍한 알고리즘을 무한으로 답습하며 살아가야 할 가련한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물은 바로 음악일지도 모른다. 그의 유작이 된 앨범 [You Want It Darker]의 가사처럼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는 노신사에게 가슴 한 켠이 아프게 아려오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우리는 모두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것이다. 또 다시 시작된 삶도, 사랑도, 참기 힘든 어떤 날들도 우리는 바람 부는 거리에 앉아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이겨낼 것이다. 고종석은? 현재 고음질 음원사이트 그루버스의 사업본부장(COO)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여성가족부 청소년유해매체물 음악분야 심의분과위원, 월간 재즈 피플(Jazz People), 파라노이드(Paranoid), 벅스(Bugs), 음악취향Y, 이명 등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음악 산업과 관련해서 음반사 인디(INDiE), 뮤직디자인, 갑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했으며, SBS와 서울음반 등에서 음원 유통과 DB구축, 마케팅을 담당했다. 음악평론에 관련해서 월간 록킷(ROCKiT) 편집장을 거쳐 서브(Sub), 핫 뮤직(Hot Music), GMV, 오이 뮤직(Oi Music), 씨네 21 등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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