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 신부님이 꿈에까지 현몽하셨죠. 이번 작업은 그림뿐만 아니라 내 신앙 안에서도 큰 체험으로 다가오는 소중한 작업이었습니다”
가톨릭 성화 작가로도 명성을 높이고 있는 정미연(62) 화백이 22일부터 내년 1월12일까지 대구 범어동성당 드망즈 갤러리에서 ‘에밀 타케 신부님을 만나다’전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대구대교구가 최근 타케 신부 현양 사업의 일환으로 신부의 큰 발자취를 제대로 알리기 기획됐다. 한국명 엄택기(嚴宅基)인 에밀 타케(Emile J. Taquet·1873~1952) 신부는 사제이면서 탁월한 식물학자였다. 타케 신부의 파란만장한 삶을 화폭에 담아 기념전을 열고 있는 것.
정 화백은 서울대교구 주보 표지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지난 3월,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2016’ 전을 가진데 이어 이번에도 그림을 통해 다시 부활한 에밀타케 신부를 만나는 기쁨을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지난 12일, 전람회를 앞 둔 선생을 배동 작업장에서 만났다. 원화를 감상하는 감동을 누구보다 먼저 누릴수 있었다. 실리적인 득을 얻기 어려운 작품(성화)들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충만해지기에 가능할 것이다. 뒤늦게 그림으로나마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하는 정 화백은 신앙안에서의 열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임자로서 이번 전시 또한 자연스레 추진된 것이다.
-에밀 타케 신부...사제이면서 탁월한 식물학자로 왕벚나무 원산지 ‘한국’임을 입증
에밀 타케 신부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1897년 24살 때 사제 서품을 받고 몇 달 뒤인 이듬해 초 교황의 명을 받아 서울에 첫발을 디딘 뒤 50여 년 동안 제주도와 대구를 비롯해 밀양, 김해, 목포, 나주, 진도, 해남, 완도 등 주로 남부지역에서 사목했다. 1922년부터는 대구대교구에 정착해 성(聖)유스티노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 교수와 교장을 지냈다.
타케 신부는 1952년 대구신학교에서 임종한 뒤 지금도 한국 이름 ‘엄택기’란 이름으로 대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식물의 표본을 채집해 학명을 짓고 유럽 학계에 알려 한국 식물분류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특히 1908년 제주 관음사 경내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유럽 학계에 그 표본을 보고해 왕벚나무 원산지가 일본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을 ‘한국’임을 입증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또 1911년 ‘온주밀감’ 묘목 10여 그루를 들여와 옛 서홍성당 자리 등에 심었고, 이로써 제주도를 감귤 산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도 한다. 오늘날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인기 있는 한국특산 구상나무도 가장 먼저 유럽에 전한 게 타케 신부였다.
대구대교구 차원에서 에밀 타케 통합기념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초대전을 주최한 정홍규 신부는 “왕벚나무는 이제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상징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정 화백의 성화 초대전을 통해 타케 신부의 열정이 부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타케 신부의 이런 선구적 행적이 새삼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정홍규 신부가 대구대교구청 등에서 타케 신부가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왕벚나무 두 그루를 발견하면서였다고 한다.
-타케 신부님의 한국민에 대한 사랑 이해하고 묵상 한 뒤 ‘그림 스르르 풀려’
정 화백은 이번 전시 제의를 받고 “낡은 흑백 얼굴사진 두 장 밖에는 남긴 기록이나 자료가 워낙 없었어요. 사실, 두 장의 사진만으로는 신부님의 일생을 그려달라는 요청에 영적인 감흥을 받기는 어려웠어요”라며 수소문 끝에 마산교구 완월동 성당 100년 자료집에 나오는 선교사 서한 중 엄택기 신부가 보낸 편지글 수십 통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물꼬를 틀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시대상황과 가난한 한국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그 분이 한국을 위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열악했음을 알았어요”
식물학자였던 타케 신부는 제주 민란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한라산과 온 산천을 오르내리며 채집해 신종으로 명명된 15품종 식물들에 대해 등재를 한다. 등재이후에는 얼마간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어 한국교회일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섬잔대, 한라부추, 왕밀사초, 두메담배풀, 섬잔고사리, 반들고사리, 갯취, 좀갈매나무, 제주가시나무, 사슨딸기, 해변취, 한라꿩의다리, 뽕잎피나무 등을 명명하기에 이르는 것. 특히 학명에 ‘타케’가 들어간 식물도 13종이 된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 일련의 상황과 타케 신부님이 한국민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고 명상을 했습니다. 가슴이 찡했지요. 다시 서한문을 읽었을때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신부님 같은 분이 오늘날 우리교회의 밑거름이 됐구나’ 생각하며 그분이 얼마나 힘들었지를 가늠하니 절절해졌고 작업에 돌입할 수 있는 영적인 감화를 받았죠. 그러고나선 그림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신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 땅의 식물 한 포기까지 사랑한 그 아름다운 마음을 상상하면서 작업에 임한 것이다.
-타케 신부 발굴하고 선양하는 작업의 일환, 이번 전시로 타케 신부 스토리 공유되길 기대
정 화백은 이번 작품들속에 관람자의 신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작품 단상을 쓰기도 했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임을 알리신 신부님! 한국의 자존감을 왕벚나무를 통해 깨우쳐 주심을 감사드리나이다” , “이 강산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신 신부님의 열정이 이 시대에 우리를 다시금 일으키시어 주를 찬미하게 하소서”라고 적고 있는 것.
“그 분을 기억하는 기념사업에 물꼬를 트는 일로 이번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어서 더욱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었지요. 내 몫은 신부님의 깊은 마음을 끄집어내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분을 통해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묵상하며 내 삶의 중요한 몫으로 여겼습니다. 제 그림의 모든 원천인 ‘사랑’그 자체를 실현한 분의 일을 했다는 자체가 뿌듯하고 기뻐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자하는 사랑의 연결고리로 임했고 다른 전람회와는 다르게 더욱 기뻤던 작업이었던거죠”
가톨릭 재단인 대구 효성여대 회화과를 나온 정 화백은 왕벚나무의 문화재 지정과 타케 신부의 삶을 알리는 스토리텔링 개발에 도움이 되고 이로써, 타케 신부의 스토리가 공유되길 기대했다. 이번 전시는 타케 신부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선양하는 작업으로서 정 화백의 진심어린 체화로 풀어낸 의미있는 전람회로 이미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