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계-함민복 죽은 시계를 손목에 차고 수은전지를 갈러 가는 길 시계가 살아 움직일 때보다 시계가 무겁다 시계가 살았을 땐 시간의 손목에 매달려 다녔던 것일까 시간과 같이 시계를 들고 있었던 것일까 죽은 시계를 차고 나니 마치 시간을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마치 시간을 어찌할 수 있는 것처럼 시계가 무겁다 -우리는 매일 죽은 시계를 차고 있는 건 아닐까 죽은 시계가 살아 있는 시계보다 무겁다니? 이성적으로는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죽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일상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 그저 그런 풍경으로 채워진 무료한 시간들을 죽은 시계에 비유한 것이다. 죽은 시간은 그 무게만으로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 시간은 짐스러울 뿐이다. 반면 살아 있는 시간은 존재의 신비성이 있고 기다려지고 설레는 시간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의식(儀式)’이다. 일테면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설렘의 시간을 생각해 보라.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가령 오후 네 시에 네가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행복해져 네 시가 되면 안절부절못하게 될 것”이라 한다. 이 때 우리 존재는 “시간의 손목에 매달려 다녔던 것”처럼. “시간과 같이 시계를 들고 있었던 것”처럼 전혀 무게를 느끼지 않는 다른 차원의 시간을 산다. 그러나 의무와 격식, 욕망에 매달린 존재들은 “마치 시간을 들고 서 있는 것처럼” “시간을 어찌할 수 있는 것처럼” 무거운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이 차고 있는 시계는 ‘산 시계’인가, ‘죽은 시계’인가? 지금 한번 확인해 보시라.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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