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은 대설이었다. 이 절기는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12월 7,8일경이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 했다.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꼭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속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요즈음 예년에 비해 약간 기온이 높다고는 하나 그래도 춥다. 대설에 눈이 오지 않아서 그런가? 예전에는 참 추웠다. 마당에서 세수를 한 후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에 쩍 달라붙고, 머리를 감으면 고드름이 머리에 주렁주렁 맺혔었다.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었다. 옛 신라 때에는 지금보다 더 추웠으리라. 1974년 초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으로 발가벗고 대중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행위를 스트리킹(Streaking)이라고 한다. 한때 이 행위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옛날 신라 때 황룡사 스님이 한겨울 그것도 혹한의 밤중에 스트리킹를 한 일이 있었다. 『삼국유사』「감통편」‘정수사(正秀師) 구빙녀(救氷女)’에는 정수스님이 알몸으로 추운 겨울밤에 스트리킹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제40대 애장왕 때, 황룡사에 정수(正秀)스님이 있었다. 눈이 많이 쌓인 어느 겨울이었다. 삼랑사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황룡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두웠다. 삼랑사에서 황룡사까지의 거리는 10리가 넘는다. 중간쯤에 있는 천엄사(天嚴寺) 문밖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 한 거지 여인이 아이를 낳고 누워서 얼어 죽게 되었다. 스님이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그녀를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몸을 덥혀 주었더니 한참 후에 깨어났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 주고는 벌거벗은 채 황룡사로 달려왔다. 그러나 스님의 옷은 단 한 벌 뿐이었다. 벌거벗은 채 거적 풀로 몸을 덮고 추위에 떨면서 밤을 세웠다. 그날 밤에 궁정 뜰을 향하여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황룡사의 중 정수를 마땅히 임금의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라.” 이에 급히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니, 그 사실이 모두 그대로 왕에게 알려졌다. 왕은 예법을 갖추고 그를 대궐 안으로 맞아들여 국사(國師)로 삼았다. 필자에게는 오래 전 고인이 되신 당숙(堂叔)이 한 분 계셨다. 평소 마음 씀씀이가 헤퍼서 당숙모를 비롯한 친지들이 늘 걱정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렸다 하면 술값은 으레 당숙의 몫이었음은 물론 주위에 어려움을 호소하면 주머니를 다 털어 주시곤 했다. 가끔 추위에 떠는 친구를 만나면 윗도리를 벗어주고 셔츠 차림으로 귀가하기도 하셨다. 옛 신라 정수스님은 아기를 낳은 거지 여인에게 윗도리뿐만 아니라 옷을 몽땅 벗어주었으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준 셈이었다. “무엇인가를 베풀 때에는 거기에다 모든 것을 거는 자가 가장 존귀하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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