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처음시작은 관심이었고, 그것이 사랑으로 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 아이와 똑같이 대했고, 어느새 나는 그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2016년 경주시민상 봉사부문의 주인공 허학순 씨의 말이다. 작은 체구에 환하게 웃는 모습은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주부의 모습이다. 허학순 씨는 시민상을 타게 된 소감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많은 봉사자가 많지만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뜻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봉사란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많은 시민이 봉사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지역에서 봉사를 시작한지 23년. 오랜 시간동안 봉사에 바친 그녀가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1993년으로 거슬러간다. #두 아이의 엄마에서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이 계기 허학순 씨는 1993년 소년·소녀 가장 돕기를 시작으로 봉사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당시 지역에서 자그마한 분식집을 운영하던 학순 씨는 소년·소녀 가장 돕기를 알아보고 있었고, 처음으로 후원하게 된 가정의 아이들을 만나며 후원을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고. “당시 TV나 신문 등의 매체에서 소년·소녀 가장을 돕자는 내용이 많이 있었고, ‘아 ... 만약 내 아이들이 부모가 없는 상황이 온다면?’ 이라는 마음에 아이들을 후원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때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처음으로 후원을 하게 된 아이들은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저와 동갑이었고, 나이가 같다 보니 빠르게 친해졌었죠. 자주 보고, 일을 도와주고 하다 보니 더 빠르게 친해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알코올 중독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중략)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어느샌가 저는 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그녀는 더 자주 아이들의 집을 방문했고, 때로는 집으로, 때로는 자신이 운영하던 분식집으로 아이들을 데려와 돌봐주었다. “많이 힘들었죠(웃음). 아이 둘을 돌보는 것도 힘든데 다섯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생겨버린 거죠.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던지라 더 힘든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똑같이 대해줬습니다. 친아들들에게 하듯이 아이들에게 똑같이 대했죠. ‘차별’을 두고 아이들을 대해서 마음에 상처가 남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두 아들과도 친하게 잘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속상한 일들도 많았다고 그녀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고 했다. “참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전에는 없었던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작은 문제로 인해 경찰서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보호자란에 서명을 하는 것이 있었는데 서명을 하면서 많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경찰서란 곳을 처음 가보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고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아이들을 데려오려면 서명을 해야 했기에 서명하고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아주 잠시 망설였던 것 같아요. ‘잘해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경찰서까지 와야 하나?’라는 마음이 들면서 조금 망설였던 것 같아요(웃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그랬죠. ‘이제 문제를 일으키면 아줌마가 대신 벌을 받아야 한단다. 아줌마를 생각해준다면 너의 밝은 모습을 감추지 말고 바르게 자라주렴’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신기하게도 그 일이 있고나서 아이들은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녀의 진심이 통해서일까. 그때 일을 계기로 아이들과 그녀의 사이에 희미하게 그어진 있던 경계선이 허물어진 것처럼 신뢰가 생겼다고 한다. 이후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시간이 흐르고 낯선 사람이 학순씨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고 학순씨에게 인사했던 사람은 학순씨가 돌봐줬던 아이들 중 막내였다고 한다. “깜짝 놀랐어요. 길을 가는데 누군가 저에게 인사를 하더라구요.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봐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막내였다고 하더군요. 저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못 알아봤는데 먼저 알아봐주고 인사해줘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지금은 경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경주에 잠시 돌아왔는데 저를 알아보고 인사했던 거죠. 제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애들인데 벌써 나이가 들어서 어엿한 어른이 된 모습을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지요(웃음)” #2000년 새로운 봉사의 시작 1993년부터 시작됐던 소년·소녀 가장 돕기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끝이 나고, 2000년부터 학순씨의 새로운 봉사가 시작됐다. 자원봉사단 ‘진여회’에 소속되어 개인이 아닌 단체로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 성동급식소 및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급식지원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며 지역의 노인복지시설을 통해 어르신들을 위한 목욕봉사 및 프로그램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왔다. “2000년부터는 새로운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이 아닌 단체로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활동이 시작 됐죠. 그때 진여회의 활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진여회 활동을 통해 많이 보고, 많이 배우고, 많이 느끼게 됐습니다” 꾸준한 봉사활동을 통해 지난 2010년 진여회의 회장직을 맡으며 구심점 역할과 리더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며 50여 명의 진여회 회원들과 함께 다양한 자원봉사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기 시작한다. 자선기금 마련 행사 등을 통한 복지기관·시설에 후원,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태권도대회, 축구대회, 문화예술체육행사에 안내, 급수, 단체, 질서유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의 역량강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역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주는 등대역할을 하고 있다. #‘봉사’를 통한 자기 자신과 주변의 변화 23년의 봉사는 학순 씨에게 변화를 주었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어요. 지금 모습을 보면 과거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될 수도 있죠(웃음). 그만큼 많이 바뀌었어요.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어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밝아지려고 말이죠. 책임감도 생기고, 봉사는 여러 가지로 저에게 많은 것을 변하게 하고, 가지게 해줬습니다” 봉사를 통해 얻은 것이 더 많다는 학순씨. 스스로 얻은 것도 많지만 가족들이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우리 아들둘이 저랑 같아요.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나서서 먼저 도와주고, 나누고 하죠. 그래서 집에 뭘 많이 사다놓지 못한답니다. 눈에 보이면 다 나눠줘버려서(웃음). 주변에서는 ‘엄마 닮아서 그래. 엄마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아들들도 똑같이 하는거야’라고 말하는데 아닌 척 해도 듣기좋은 말이지요(웃음)” 아닌 척 하지만 내심 두 아들이 대견한 학순 씨의 얼굴엔 인터뷰 내내 웃음이 사라지질 않는다. “사실 이번에 경주시민상을 받을 때 굉장히 놀랬습니다. 제가 봉사상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더 놀라기도 했고, 알고 보니 굉장히 큰 상이라서 두 번 놀랬죠. 시민상을 수상하기까지 아들들에게도 말도 안했을 정도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더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제가 탈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죠. 상을 받고 아들들에게 그리고 친정어머니에게 알렸더니 너무 좋아해줘서 기뻤습니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상으로 받은 메달은 처음으로 시집오는 며느리에게 물려줄 생각이에요. 우리 아들들이 아직 장가를 안가서(웃음)” #봉사란? 학순 씨가 표현하는 봉사란 ‘만병통치약’, ‘마음의 꽃밭’, ‘아름다운 무지개’, ‘중독’이라고 했다. 봉사에 한 번 빠지면 아프더라도 봉사할 시간만 다가오면 아팠던 몸이 나아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눈길과 손길을 한 번 더 주고 싶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봉사라는 것은 절대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겉으로 보이기에는 봉사자들이 누군가를 위해, 주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오히려 봉사를 통해서 봉사자들이 얻어오는 것이 더 많아요. 봉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만족감, 감동, 뿌듯함은 다른데서는 느낄 수 없는 같은 단어, 다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경주시민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경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엔 아직도 어려운 이웃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봉사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봉사할 조건을 갖추고 시작하려고 하면 많이 늦어집니다. 마음이 있다면 먼저 실천을 해보는 것을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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