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재즈와 월드뮤직에 취해 몸살을 앓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이 1991년에 발표한 2집 앨범 [Myself]의 수록곡 ‘재즈카페’는 재즈의 대중화를 먼저 읽고, 표현한 멋진 노래였다. 이 노래의 히트 이후 수많은 재즈 관련 도서와 컴필레이션 음반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카페와 미용실 등도 재즈와 관련된 상호를 사용하는 기현상도 뒤따랐다. 흔한 말로 ‘재즈를 입고, 재즈를 바르고, 재즈를 먹던 시기’였다.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의 재즈 열풍이 일었듯이,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은 어떠했을까? 컨트리와 블루스, 이지 리스닝, 로큰롤 등 여러 대중음악이 탄생된 미국은 유독 재즈를 통한 소통이 발달되어 나온 것이 사실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신문연재만화의 대명사 ‘피너츠(Peanuts)’. 이 작품은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독자들에게 고르게 사랑받았던 덕분에 ‘스누피’, ‘찰리 브라운’, ‘우드스탁’처럼 주요 캐릭터 이름을 작품의 제목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꽤 된다. 찰스 슐츠(Charles M. Schulz)가 1950년 10월 2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피너츠’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며, 가장 모범적인 미디어믹스로 통한다. ‘피너츠’ 연재가 시작된 1950년대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유일의 강대국에 떠오른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공산 세력의 팽창에 위협을 느낀 가운데 매카시즘으로 대변되던 때였고, 노예 해방이 오래 전에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인종 차별이 만연했다. 미국 대중문화는 1950년대 이전에 대중음악의 중심이었던 재즈를 통해서 발달하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와 힌데미트(Paul Hindemith)와 같은 작곡가는 클래식에 재즈를 도입시킨 작품을 발표했으며, 미국에서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아직도 재즈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미국의 민속음악’이라고 칭해지는 재즈는 21세기에 들어와서 그 예술성까지 인정받음으로써 서양 예술 음악사인 클래식 음악과 나란히 연구되기도 한다. 재즈는 흑인 노예들이 그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한탄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가스펠과 한이 서린 음악으로 알려진 블루스, 그리고 랙타임의 흥겨운 멜로디 라인이 결합되며 시작된 음악이다. 현대 음악계에서 그나마 잘 알려진 가스펠과 블루스와 달리 랙타임은 1870년대부터 미국의 세인트루이스를 중심으로 술집과 무도장 등에서 흑인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던 스타일이다. 1910년대까지 크게 유행했던 랙타임의 대표곡은 영화 ‘스팅’의 ‘The Entertainer’를 연상할 수 있다. 재즈의 기원이 된 랙타임의 향취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적 색채와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대공황의 깊은 늪에서 서서히 벗어날 징조를 보이던 1935년 당시 스물여섯 살의 청년 베니 굿맨(Benny Goodman)의 등장은 미국 대중음악은 물론 전 세계 음악에 있어서 혁명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가 로스앤젤레스의 팔로마 볼룸에서 연주하는 동안 막 걷기 시작한 아이부터 팔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베니 굿맨이 연주하는 스윙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음악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음악이다” 이 날 일어난 에피소드는 새로운 음악의 시대, 즉 스윙의 시대를 알렸다. 랙타임을 기조로 한 도시적인 분위기의 밝은 사운드를 지닌 스윙은 대중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이후 이어지는 비밥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는 1995년 자신의 아버지 엘리스와 형 브랜포드 등과 함께 만화 ‘피너츠’에 삽입되었던 곡을 재해석한 [Joe Cool’s Blues]를 발표하고 빌보드 재즈차트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당시 “내가 어렸을 때 TV를 통해 재즈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은 ‘피너츠’를 보는 시간이 유일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피너츠’는 재즈의 역사와 함께 재즈의 지난 세월을 아우르는 생명력까지 지닌 작품이다. ‘피너츠’에 뿌리 깊게 녹아내린 재즈는 극 전반에 걸쳐서 흐르고 있으며, 긴장과 위트의 순간에도 늘 함께 해 나왔다. 만일 ‘피너츠’에 삽입된 음악이 또 다른 미국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블루스나, 컨트리, 더 나아가서 로큰롤로 채색되었다면, 오늘날 ‘피너츠’의 성공은 이 정도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고, 어른들마저 빠져들며 공감할 수 있는 작품 ‘피너츠’의 성공은 재즈의 역할이 매우 컸음에 분명하다. 많은 것들이 지나치고 쌓이며, 또한 분노하게 만드는 즈음이다. 올 연말에는 동심 가득했던 작품 ‘피너츠’와 그 안에 담겨졌던 재즈의 향기에 잠시 빠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고종석은? 현재 고음질 음원사이트 그루버스의 사업본부장(COO)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여성가족부 청소년유해매체물 음악분야 심의분과위원, 월간 재즈 피플(Jazz People), 파라노이드(Paranoid), 벅스(Bugs), 음악취향Y, 이명 등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음악 산업과 관련해서 음반사 인디(INDiE), 뮤직디자인, 갑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했으며, SBS와 서울음반 등에서 음원 유통과 DB구축, 마케팅을 담당했다. 음악평론에 관련해서 월간 록킷(ROCKiT) 편집장을 거쳐 서브(Sub), 핫 뮤직(Hot Music), GMV, 오이 뮤직(Oi Music), 씨네 21 등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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