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현재 확인된 것 만해도 16만 7000여 점이나 된다. 일본과 미국에 10만 점이 있는 것을 비롯해 20여 개국에 흩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경주에서의 이번 협약과 학술세미나는 의미가 크다”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회장 박영석)는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경주코모드호텔에서 ‘일제강점기 영남지역 문화재 훼손과 반출’을 주제로 학술행사와 경주지역 문화재 찾기 결의문 채택과 환수 선포식을 열고 관광객과 시민들을 상대로 환수 캠페인 활동을 펼쳤다. 이번 행사는 천년의 고도 경주는 전국문화재의 17%나 소재하고 국외반출문화재도 많은 곳에서 국외소재 문화재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와 경주지역에서 문화재 보존과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고 있는 경주문화원, 신라문화동인회 등 단체와 공동으로 학술행사와 환수 캠페인 활동을 펼쳐 문화재 환수 활동에 범국민적 참여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열린 것. 개회사에서 박영석 회장은 “신라와 가야, 유교의 문화가 꽃 핀 지역이 바로 경북이다. 특히 경주는 우리의 문화적 저력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이자 자긍심의 뿌리인 동시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반출되고 훼손된 가장 심각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경주지역 반출문화재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있는 인식과 이들 문화재에 대해 앞으로의 효과적이면서도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발표는 일제강점기 등 국난기에 경주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피해 사례를 중심으로 영남대 정인성 교수가 ‘일본나고야박물관 소장 오가와게이키치자료의 조사보고’, 경북대 박천수 교수의 ‘조선고적조사위원 오가와게이키치와 양산부부총’을, 대구향토문화연구소 정규홍 사례조사위원이 ‘경주지역 문화재 외국반출사례’를 주제로 전문가들이 조사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등 전문 패널들과 참석자들이 함께 다방면으로 환수 방안을 토론했다. 특히, 대구향토문화연구소 정규홍 사례조사위원의 ‘경주지역 문화재 외국반출사례’에서는 “경주 지역에서는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문화재를 생산하고 보유하고 있었던 만큼 한말이후 혼란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장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거나 제 자리를 떠나 외지로 반출됐다”고 전제하면서 무엇보다도 반출 문화재의 불법성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고 이러한 불법성을 밝히기 위해선 그 반출 경로 파악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정 위원은 반출된 문화재의 사례를 살피고 당시의 사실상을 파악해보고 문화재 보존과 가치 부여에 대해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는 1903년 다보탑 석사자 반출, 1908년 선덕왕릉 도굴, 석굴암 감살 내 보살상 도난, 1916년 일본으로 가져가 소개한 분황사탑 발견 유물, 1925년 임해전지 훼손, 1931년 인왕리 적석총 도굴, 1934년 안압지 도굴, 1935년 성덕왕릉 도굴, 1936년 경주 석탑 매각 등 반출된 문화재의 사례들을 들었다. 정 위원은 “고미술의 매매 과정에 대한 자료 수집도 시급한 일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 전시하거나 경매한 도록들을 수집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도록들은 고서점가나 도서관 등에 상당수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며 도록류의 수집은 그 경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료들의 종합이며 각 유물에 대한 각종 조사를 하나의 목록에 계속적으로 축적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으로 반출된 문화재 제자리 환수 선포식에서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의 활동영상물 시청과 박영석 회장의 국외소재 우리문화재찾기 활동계획, 김윤근 원장의 경주지역문화재 제자리찾기 활동 계획 설명과 문화재 제자리 찾기 결의문 채택을 했다. 또 26일부터 27일까지는 이번 행사 주최 대표들과 회원들이 대능원과, 첨성대, 월지에 홍보부스를 설치해 문화재를 찾은 방문객과 시민들에게 홍보물 배부와 서명 활동을 전개, 반출문화재에 대한 인식과 환수의지를 높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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