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열심히들 찍는다. 레스토랑만 하더라도 음식을 즐기는 유쾌한 소리보다 찰칵~ 하고 사진 찍는 소리가 더 자주 들린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고 먼저 포크를 갖다 댔다가는 ‘아빠는 뭘 모른다’고 애들한테 핀잔듣기 딱 좋다. 그들에게는 아직 집전해야 할 성스러운 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음식이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각도를 찾아 접시를 돌려가며 찍고 또 찍는다. 사진에 소리가 기록되지는 않지만 접시 주변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도 침묵과 집중으로 이 의식에 동참한다.
오늘 이야기 주제는 셀카 문화다. 집전화가 기술의 발전으로 모바일 환경으로 바뀌자 핸드폰은 기능면에서 아주 스마트하게 발전을 거듭한다. 특히 영상통화를 위해 시작된 핸드폰 속 저해상도 카메라는 이제 1300만 화소의 고해상도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회사마다 통화음질에 대한 홍보보다는 자기네 폰에 얼마나 고해상도의 렌즈가 장착되었는지가 광고 포인트다. 전화기를 파는 건지 전화기라는 이름의 고급 사진기를 파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운 현상 이면에는 소위 ‘셀카’ 문화가 버티고 있다.
영국 파이넨셜 타임지는 2013년 한 해를 셀피(selfie)로 요약하는 칼럼을 써서 이목을 끌었다. 한국의 셀카와 이름도 어감도 비슷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칼럼의 주인공으로 삼곤 했지만, 사람들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는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현상 중심에 놓기에 충분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 선정한 2013년 ‘올해의 단어’이기도 한 셀피는 위키피디아에서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찍은 자신의 얼굴사진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SNS로 공유’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딱 우리의 셀카 찍기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은 사슴처럼 동그랗게 뜨고 입은 금붕어처럼 해서 자기 얼굴을 찍는 것 말이다.
얼굴만 찍다가 그 대상이 음식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펜션 같은 장소로 확대되었다. 거기에 셀카봉이 추가되면서 찍고자 하는 대상을 일단 등지고 서는 재미있는 문화를 낳았다. 여태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우연히 보게 되면 그들을 찍거나 그들의 사인을 받기에 급급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이 목표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그런 문화 자체를 바꾸어 버렸다. 셀카봉에 달린 스마트폰으로 내 얼굴 옆에 그 연예인 얼굴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미국 대선에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을 찍으려고 유권자들이 각자 폰을 든 채 일제히 등을 돌리고 있는(!) 해외토픽 사진이 생각난다. 힐러리도 절대로 그들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저 등을 돌리고 있는 그들 너머에서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다. 자신은 사진의 주인공이 아니라 유권자들 사진에 끼어든 주변인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셀카의 중심은 바로 나니까.
셀카가 내가 찍은 내 사진이라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앞에 놓인 요리를 굳이 사진으로 남길 이유는 없다. 요리는 내 입맛으로 기억해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먼저 갖다 대는 이유는 결국 나보다 타인에게서 찾아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가 그것이다.
정말 무더웠던 올 여름, 서울 강남에서는 S버거라는 이름의 광풍이 불었다고 한다.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햄버거에 감자튀김, 그리고 햄버거하고 궁합이 좋다는 밀크셰이크를 더하면 이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인데도 사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선다고 한다.
지방에서 상경해가면서까지 쥐고 싶었던 게 햄버거보다는 그 사진인지 모른다.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고 나서야 햄버거 맛을 음미할 여유를 가진다. “와, 그거 요즘 최고로 핫(hot)한 아이템인데”, “넘 부러워용”, “나두 먹고 싶어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확인하고서야 햄버거가 우리 입맛에는 좀 짜다는 걸 느낀다. 고생해서 얻은 ‘인증샷’ 한 두 컷으로 요즘 트랜드에 동참했다는 안도감과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동시에 얻었는데, 햄버거가 좀 짜면 어떠랴.
그나저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올 한 해를 대표하는 ‘올해의 단어’는 뭐가 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