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其戰勝不復, 而應形於無窮(고기전승불복, 이응형어무공)”
손자병법 第六 허실편(虛實篇)에 나오는 대목이다. 적보다 먼저 전쟁터에 도착해서 적을 기다리는 군대는 편안하고, 적보다 늦게 전쟁터에 도착한 군대는 다급한 법이다. 유능한 리더는 능동적인 위치에서 상대를 받아들이고, 피동적으로 상대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의 실상과 의도가 드러나도록 유도해야 하며, 자신의 현실과 의도는 감추는 것이 필요하겠다.
승리와 성공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삶’을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잠시 살펴보자. 우리는 삶 속에서 여전히 진부한 발상의 흐름을 보일 때가 있다. 이는 적에게 자신의 방법론과 행동 방향에 대해 가감 없이 노출됨으로써 냉정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 번 승전을 거둔 방법은 되풀이하지 않으며, 때와 장소에 따라 응전하는 형태는 무궁무진하다”는 상위 인용문 ‘손자병법 허실편’은 즈음의 세상사에 소중한 교훈을 전한다.
기업을 경영하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일률적이며 과거와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다른 경쟁자들에게 쉽게 추월을 허용할 수 있다. 과거의 성공과 그에 따른 현재의 안정에는 본연의 창의력과 진보적인 발상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동일한 흐름과 비루한 사고의 연속은 경영과 경제적 현실에서 퇴보와 상실의 분명한 결과를 보여준다. 우리가 일을 하고, 배움을 익혀 가는 중 더 이상 치고 나가지 못하거나, 실패의 연속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당면한 환경과 변화하는 주변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리더와 경영자가 돋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특수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과거의 성공적인 잣대를 거두고 보다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룬다. 그리고 전체가 아닌 바로 곁의 주변부터 살피며 새로운 맥을 짚어낸다.
지금은 기억에 밀린 서비스로 기억되지만, 커뮤니티 사이트 가운데 싸이월드가 존재한다. 2005년 전후 싸이월드의 전체 매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콘텐츠가 바로 음원 서비스였다. 한창 때 싸이월드의 음원 관련 월 매출은 20억 원에 육박했었다. 싸이월드의 음원 서비스 방식은 한 곳의 주요 콘텐츠 제공사(MCP) 밑에 개별 콘텐츠 제공사(CP)를 여럿 두던 형태였다.
특별할 것 없었던 싸이월드의 외주업체 운영 방식 속에서 음원 서비스가 주요 매출원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위에 언급한 ‘손자병법 허실편’과 다름 아니다.
2003년 당시 IT업계에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었다. 음원 서비스 역시 한 축을 이루고 있었지만, 당시 음원 서비스 시장은 한 가지 특수한 이슈에 직면하고 있었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던 업체 가운데 80% 이상이 저작권과 관련해서 불법적인 요소를 끌어안은 채 운영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크고 작은 저작권 관련 소송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음원 서비스는 IT 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을 얻었고, 일편에서는 저작권 이슈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 음원 서비스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음원 서비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3가지의 기본 요소를 충족해야 가능하다. 먼저 재생될 수 있는 음원 파일과 그 파일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 메타DB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담고 서비스로 호환시키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작사, 작곡자, 제작자 등에게 서비스를 위한 사용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는 현재의 음원 서비스 역시 동일하게 충족해야할 기반 요소이다. 불법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사용자를 위한 DB와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성하며 사업 환경을 다져왔던 업체 가운데 뮤직시티라는 기업이 있었다.
2003년 당시까지 성장을 거듭하던 이들 역시 과거 불법 서비스에 대한 환급 보상 문제로 전전긍긍해야 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뮤직시티는 자체적인 서비스 강화나 포털 사이트 등에 CP, 혹은 MCP로 사업을 전개하던 여타 기업들과 다른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뮤직시티는 커뮤니티 안에서 음원 서비스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환급 보상 역시 순조롭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뮤직시티는 저작권자 등과 새로운 콘텐츠 수급 방식 계약을 제안해서 여러 권리자들의 사용승인을 얻어냈다.
이 과정 속에서 뮤직시티는 싸이월드와 MCP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뮤직시티는 싸이월드의 서비스를 분석하며 ‘배경음악서비스’라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게 된다. 커뮤니티의 속성상 자신을 포장하고, 상대에게 선물하기 위해 음악은 최상의 도구였다. 결국 싸이월드의 배경음악 서비스는 월 20억 원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음원 서비스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위의 사례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시장과 틈새는 언제나 존재하며 그 틈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장이 좁아 보인다면 대중이 가장 크게 소원해 하는 것을 찾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뮤직시티는 가장 큰 걸림돌로 시장이 아닌 바로 곁 주변을 먼저 살폈고 그에 대한 방법을 찾아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과거의 성공에 의한 안주와 안위적인 발상이 아닌, 이전보다 주변을 더 살피고 모두를 위할 수 있는 발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끼는 시기이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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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은?
현재 고품질 음원사이트 그루버스의 사업본부장(COO)로 재직 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여성가족부 청소년유해매체물 음악분야 심의분과위원, 월간 재즈 피플(Jazz People), 파라노이드(Paranoid), 벅스(Bugs), 음악취향Y, 이명 등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음악 산업과 관련해서 음반사 인디(INDiE), 뮤직디자인, 갑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했으며, SBS와 서울음반 등에서 음원 유통과 DB구축, 마케팅을 담당했다. 음악평론에 관련해서 월간 록킷(ROCKiT) 편집장을 거쳐 서브(Sub), 핫 뮤직(Hot Music), GMV, 오이 뮤직(Oi Music), 씨네 21 등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