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박민수
아들과
며느리와
어린 손주 둘이
한 차로 집엘 왔다.
몇 개월 만이다.
하룻밤 자고 손님처럼
그들은 또 제집으로 간다.
잘 가,
또 오너라.
부우웅 떠나는 찻소리 바람을 가르고
차창 밖으로 아이들이 흔드는 손짓 멀리
갈대처럼 나부낀다.
안녕히 계셔요,
또 올게요.
그래 또 오너라.
그렇게 손을 흔들며 손님은 가고
방으로 돌아와 아내와 나는
말없이 텔레비전을 본다.
손님은 떠났는데 어쩌자고
그 손님들 목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아내가 문득 창문을 열고
멀리 찻길을
바라본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 문득 낯설어진다면?
자식은 내 몸에서 나온 또 하나의 몸이요, 수 십 년을 한 방에서 잠을 자고 몸을 부대끼고 밥을 먹는 피붙이다. 그 피붙이의 식구를 이 시는 ‘손님’이라고 한다. 손님, 혹은 길손이라는 말의 어감처럼 시의 행들은 짧고 담담하다. 여윈 구절의 연속이라 해도 좋으리라. 세밀 묘사 없이 단문들이 시간 순서를 따라 휙휙 스쳐 지나간다. 행간마다 바람은 불고 감정은 팍팍하고 쓸쓸하다. 그 사이에 한 차를 타고 왔던 그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아들네 식구는 “몇 개월 만에” 집엘 왔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손님처럼/ 그들은 또 제집으로” 가버린다. ‘몇 개월 만에’과 ‘하룻밤 자고’가 대비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한 차”로 왔던 그들이 “제집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 가혹한 분리체험! “잘 가,”, “또 오너라.”에 이어붙이는 다정한 말들이 반복되지만 그것은 마음 속 언어가 아니고 표면의 미끄러지는 말이다. “아이들의 흔드는 손짓”이 “갈대처럼 나부낀다.”고 해도 껴안을 수조차 없다. 손을 흔들며 손님은 가고 다시 말이 없어지는 부부. 그때 불쑥 틈입하는 타자의 목소리. “손님은 떠났는데 어쩌자고/ 그 손님들 목소리가 / 안방에서” 들리는가? 그런 날이 온다. 자식이 잠시 머물고 가는 길손이 되는. 내 몸의 일부분이 타자가 되는 그런 날. 누구나가 인생의 적막한 시간을 맞이한다. 그 상황을 이 시만큼 쉽고도 절절하게 존재론적 사유로 되짚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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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