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것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볼 수 있는 기기와 환경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활자와 동영상, 이미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콘텐츠’라 불리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다양한 정보와 관심거리들을 한데 모아 놓은 신문 이외의 정기 간행물을 잡지라고 부른다. 잡지는 그 시대의 생활양식과 사회와 문화적 흐름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매체이다. ‘잡지’라는 어원은 네덜란드어 ‘Magazien’에서 비롯되었다. ‘창고(倉庫)’라는 뜻을 지닌 ‘매거진’을 잡지로 적용한 최초의 정기간행물은 1731년 영국의 E.케이브가 정보와 오락을 한데 묶어서 발행한 ‘Gentleman’s Magazine’이다. 국내에서는 1896년 2월 1일 도쿄에 있던 대조선일본유학생친목회가 발행한 ‘친목회 회보’가 최초의 잡지로 기록되고 있다. 국내에서 음악과 관련된 최초의 잡지는 정보와 소통을 주요 컨셉으로 1967년에 창간한 ‘팝스 코리아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어서 일본식 번역이 주를 이룬 정보를 전달하던 ‘가요생활’과 국내외 음악인들의 가십을 다룬 ‘대중가요’가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창간되었다. 1970년 팝송 전문지를 지향했던 ‘뮤직다이얼’을 지나서 팝음악의 전도사적 의미를 지녔던 ‘월간 팝송’도 뒤를 이었다. 당시 음악잡지들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1970년대 밴드 김훈과 트리퍼스의 히트곡 ‘나를 두고 아리랑’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브라스록과 세미트로트가 결합되었던 ‘나를 두고 아리랑’은 1976년 ‘월간 팝송’이 주최한 ‘팝스 그랑프리’에서 작곡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팝스 그랑프리’의 인기를 등에 지고, 김훈과 트리퍼스는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쾌거를 일궈냈다. 어느덧 음악잡지는 뮤지션 배출과 성장에도 많은 기여를 할 정도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970년대 후반의 국내 음악잡지는 라디오 방송과 연계된 무가지가 여럿 등장을 했고, 1980년대에는 ‘월간 팝송’을 넘어서는 전문잡지인 ‘음악세계’가 창간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영미 팝음악이 대중가요보다 더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흐름이 탄생된다. 바로 페이모스와 스완송, KHMC 등과 같은 아마추어들에 의해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무가지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무가지를 만들던 이들은 현재 대중음악과 관련된 여러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음악잡지의 총아로 일컬어지던 ‘핫뮤직’이 창간되었다. ‘핫뮤직’은 팝과 록음악, 한국대중음악을 중심으로 28년 여 동안 통권 204호의 제호를 남긴 대중음악 전문 월간지이다. 정확히 1990년 11월에 창간된 ‘핫뮤직’은 ‘국내 최장기 발행 음악잡지’라는 타이틀 속에 창간 28년만인 2008년 5월에 아쉽게 종간되었다. 그 동안 ‘핫뮤직’을 거쳐 간 편집장과 기자들의 이름만으로도 이 잡지는 한국대중음악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초대 편집장을 지낸 성우진은 ‘월간 록킷’과 ‘서브’ 등의 편집장을 이어서 현재 경인방송 iFM에서 국내 유일의 음악전문방송인 ‘한밤의 음악여행’을 진행중이며, 2대 편집장인 조성진은 여러 매체를 거쳐서 스포츠한국의 부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김훈 편집장은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의 이사로 재직중이며, 마지막 수석기자 자리를 지켰던 송명하는 국내 유일의 하드록&헤비메탈 전문지인 ‘파라노이드’를 발행해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성문영과 오수석, 이원, 홍재억, 이종현, 김봉환, 한명륜, 오승해, 권범준, 권태근, 전영애 등 음악, 영화, 공연 등과 관련된 전문 평론가와 사업가들을 다수 배출해 나오면서 ‘핫뮤직’은 한때 ‘평론가들의 사관학교’로 불리기까지 했다. 창간 초기에 빌보드 차트 게재와 함께 팝음악을 주로 다루던 ‘핫뮤직’은 1960년대 대중음악부터 각 시기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대중음악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잘 나가던 ‘핫뮤직’이 잠시 휘청하던 시기도 있었다. 바로 1992년에 진행된 뉴키즈온더블럭(NKOTB)의 내한공연 당시의 압사 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공연을 주관했던 서라벌레코드가 발행처였던 ‘핫뮤직’은 폐간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새로운 발행인이 나서면서 다음 단계를 이을 수 있었다. 이후 월 발행부수가 1만5000부를 기록하는 등 호황기를 누렸지만 2008년 종간되었다. 그 동안 3040세대들과 함께 성장했으며 그들의 기억 속에서 절대적인 가치평가를 받던 ‘핫뮤직’의 부활을 바라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간을 위해 몸부림치던 ‘핫뮤직’은 원본 데이터를 모두 사기 당하는 등 추억 속의 잡지로 묻혀가는 듯 했다. 최근 종간 이후 사라질 뻔 했던 ‘핫뮤직’이 부활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볼 것들이 넘쳐나는 시절이지만, 일편 보고 싶은 것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억은 기록으로 남고, 기록은 또 다른 기억으로 다시 또 시작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전문지 ‘핫뮤직’의 복원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과거의 즐거움이 차곡차곡 다시 쌓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크다. --------------------------------------------------------------------- 고종석은? 현재 고음질 음악서비스 사이트인 그루버스의 콘텐츠&마케팅 사업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여성가족부 청소년유해매체물 음악분야 심의분과위원, 월간 재즈 피플(Jazz People), 파라노이드(Paranoid), 벅스(Bugs) 스페셜, 음악취향Y 등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음악 산업과 관련해서 음반사 인디(INDiE), 뮤직디자인, 갑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했으며, SBS와 서울음반 등에서 음원 유통과 DB구축, 마케팅을 담당했다. 음악평론에 관련해서 월간 록킷(ROCKiT) 편집장을 거쳐 서브(Sub), 핫 뮤직(Hot Music), GMV, 오이 뮤직(Oi Music), 씨네 21 등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