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12지진을 계기로 그동안의 지진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연말까지 근본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가운데 지난 21일 경주서 ‘지진방재 개선대책 현장토론회’가 열렸다. 국민안전처가 주최해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지난 9월 22일 구성된 범정부 ‘지진방재 종합개선 기획단’의 그간 추진사항을 지자체 공무원들과 공유하고, 전문가 의견수렴 등이 있었다.
지진방재 종합개선 기획단은 9.12지진을 계기로 이성호 안전처 차관과 민간전문가인 서울대 김재관 교수를 단장으로 주요 과제별로 7개 TF(테스크포스)를 구성·운영 중이다. 지진대책, 지진대응개선, 지진교육개선, 조직예산, 홍보개선, 원전안전, 문화재 등 주요 과제별로 민간전문가 75명과 22개 관계부처 29명으로 구성했다.
기획단은 기존 지진대책의 재점검·보완을 통해 근원적인 문제점을 도출해내고 종합개선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민안전처는 이날 토론회에 이어 11월 한 차례 더 종합토론회를 가진 뒤 TF별 개선과제 추진 및 점검회의를 거쳐 12월까지 ‘종합개선대책 최종안’을 마련 및 확정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토론회는 9.12지진 발생 후 늑장 재난문자 발송,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 부재 등 지역에서 제기된 정부의 허술한 재난대응에 대한 개선방안을 도출하는 자리여서 경주시민들은 향후 정부의 지진대책에 대한 결과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9.12지진 계기 종합개선대책 방안 추진
이날 토론회에서 국민안전처 재난예방정책관 안영규 국장은 ‘지진방재 개선대책 주요 추진성과’ 발표에서 내진설계 의무대상 건축물을 현행 ‘3층 이상 또는 500㎡ 이상’에서 ‘2층 이상 또는 500㎡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이 내년 1월 개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기존 민간건축물 내진보강에 대해서는 지방세(재산세·취득세) 감면을 추진하는 개정안이 11월초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또 내진보강 시 건축물 용적률을 완화하고, 지진보험료 할인 등의 방안과 건축물 대장 및 부동산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내진성능을 표시하도록 하는 안도 추진 중이다.
안 국장에 따르면 현재 45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전체 단층의 체계적 조사를 위해 내년부터 경주를 비롯해 경상도 등의 사회기반시설, 인구밀집 부지를 우선으로 국가 활성단층 연구에 들어간다.
또 9.12 지진 당시 논란이 일었던 늑장 문자 발송과 관련해선 내년 하반기부터 기상청에 별도의 재난문자 전용 시스템을 구축해 기상청에서 직접 지진관련 재난문자를 발송하기로 했다. 아울러 일정규모 이상의 지진 발생 시 사전 매뉴얼에 따라 지자체 중심으로 재난경보체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지진 발생 시 국민행동 요령이 정비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전문가 자문을 거쳐 장소별·발생 단계별로 통일된 표준안을 마련해 리플렛 2종과 소책자 1종을 제작하기로 했다. 전국 유·초·중·고 지진대피 교육 및 훈련 등 지진교육을 강화하고, ‘학교 안전 관리사’ 국가자격 신설을 추진해 교직원 안전관련 전문교육도 진행하기로 했다.
안영규 국장은 “국민들이 실제 느낄 수 있는 지진대책 마련이 그동안 우선순위에 밀려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진 교육 훈련 등을 강화하고, 지진 피해로 인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합개선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가차원 지진재난 관리 통합성·합리성 확보해야
이철호 한국지진공학회 회장(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은 ‘국가내진성능목표 및 내진설계 공통편 의결사항’에 대한 발표에서 “9.12지진으로 그동안 우리나라가 내진설계와 관련해 참고해왔던 미국서부 중심의 지반분류체계는 국내 지반조건과 확연히 차이를 보였고, 지진 특성도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이로 인해 국내서는 처음으로 고유 지반분류가 이뤄졌고, 내진설계 등에 확실한 근거가 됐다”며 앞으로 국가 내진설계 기준 등에 기술적인 변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9.12지진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그동안의 잘못된 편견을 보여준 조기경보지진”이라며 “이를 계기로 ‘법·시행령-공통기준-세부시설기준’의 수미상관한 체계를 확립하고 미흡한 부분의 제도적·기술적 정비를 통해 국가차원의 지진재난 관리의 통합성과 합리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앞으로 새로운 연구 성과나 개정·개선사항 발생 시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갱신할 수 있는 규정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진설계 법정 대상 시설물 확대’ 주장
지진·화산재해대책법 상 내진설계 법정 대상 시설물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익현 울산대 교수는 ‘국내 토목시설물의 내진설계 확대 방안’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예를 들어 도로시설물이 교량과 터널만 지정돼 있는 현행법에서 교량, 터널을 포함해 성절토, 옹벽, 포장, 지중구조물, 기타 시설물 등으로 지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 또 철도시설의 경우 기존 다리, 터널, 역사에서 선로보수기지, 전철전력설비, 정보통신설비, 제어설비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하천시설, 농업생산기반시설, 다목적댐, 도로시설물, 철도시설 등에 대해서도 내진설계 시설물을 추가로 확대해야 할 것 등을 제안했다.
김익현 교수는 “현행법에 따른 내진설계 대상 시설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느슨한 점이 있다”면서 “법에 규정된 일부 시설물을 확대해 좀 더 세밀하게 법정대상물을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창민우구조컨설턴트 김태진 박사는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 확대방안’이란 주제발표에서 “공공시설물이나 학교 등의 내진성능평가와 내진보강공사가 분리 발주 되지 않은 경우 배정된 보강공사 사업비 확보를 위해 내진성능평가가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며 “공인된 전문가 등에 의한 내진평가 및 보강설계 등을 통한 ‘기존구조물 내진보강의 적절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현행 기준은 구조물의 손상여부에 중점을 두고 있어 거점병원, 소방서, 지진대피시설 등 주요시설물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의 내진 설계절차 및 시공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서울대 박세웅 교수는 상용 스마트폰 및 드론을 활용한 재난통신망 구성 및 운용을 통해 재난 발생 시 구조자와 피구조자 간 통신으로 구조 성공률을 향상 시키는 등의 기술 개발에 돌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