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나 동굴 벽에 여러 가지 동물이나 기하학적 상징 문양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그림을 암각화라고 한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졌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고 청동기시대에 와서 가장 많이 새겨졌다.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이 많다. 경주 부근에는 석장동과 내남 안심리에 암각화가 있고 포항 칠포리, 울산 천전리와 대곡리 그리고 고령 양전동 암각화가 특히 유명하다.
2011년 5월 표암화수회에서 표암 부근의 초목을 제거하던 중 이 암각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에 발견된 암각화는 명문이나 표현된 내용으로 볼 때 선사시대의 유물이 아니며, 또 단순히 선으로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선각화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선각화는 지상 약 5m 지점 표암 서향 바위 약 230cm×200cm의 면적에 왼쪽으로부터 승려상, 불전, 삼층탑, 명문, 당간, 당번, 산문 등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부 교수는 선각화와 함께 발견된 명문을 ‘天寶二年滿月夫人干子上世也’라고 판독하면서 이를 ‘천보 2년(743)에 만월부인(滿月夫人)이 천상세존(天上世存)께 아들을 기원합니다’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이 선각화가 불당과 탑이 있는 사찰에서 만월부인이 당번(幢幡)을 봉안하면서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담은 그림으로 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만월부인은 경덕왕의 차비(次妃)로 시호는 경수태후인데 의충 각간의 딸이다. 선비(先妃)는 이찬 순정의 딸인 삼모부인(三毛夫人)인데 아들을 낳지 못해 궁에서 쫓겨났다. 만월부인이 후비가 되고 나서도 아들을 낳지 못하자, 경덕왕이 불국사의 승려 표훈(表訓)으로 하여금 하늘로 올라가 천제에게 아들을 얻도록 간청하게 했다. 표훈의 청에 대해 천제는 아들은 안 되고 딸은 얻을 수가 있다고 했다. 왕이 다시 표훈을 보내어 딸을 아들로 바꾸어 주기를 요청하니 그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왕이 고집해서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그가 제36대 혜공왕이 된 건운(乾運)이었다.
태자가 8살이 되었을 때 왕이 세상을 떠나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왕이 나이가 어려 태후가 조정의 업무를 처리했으나 이치에 맞지 않게 정사를 봄에 따라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웠다.
이 명문과 그림 이외에 오른쪽 아래에 내용이 불분명한 또 다른 명문과 선각이 일부 보이고, 오른쪽 위 약 5m 위치에도 30-40cm 높이의 석탑으로 추정되는 이미지가 선각으로 표현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마멸이 심하여 제대로 식별을 할 수가 없다.
이 마애암각화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당간이 새겨져 있고, 사찰 중요 행사 때 당간지주에 내걸었던 깃발인 당번 그림이 국내 최초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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