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길에 택배가 올 거라는 와이프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와보니 문 앞에 택배가 조심스럽게 웅크리고 있었다. 가지런히 둔 흔적이 확실한, 넓적한 놈 하나와 아주 기다란 놈 두 개였다.
‘뭐가 이렇게 크고 무겁지?’ 하고 조심해서 집 안으로 들이는데도 호흡이 가쁘다. 우리는 정말 택배 기사님한테 감사해야 한다.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놈을 여기까지 들고 오면서 기사님은 분명 투덜거렸음이 틀림없을 정도의 부피와 무게였다.
집 안에서 조심스레 열어보니 내용물은 조립 가구였다. 별다른 장식은 없지만 북유럽 특유의 이케*(IKE*) 제품의 선반이었다. 잘 알다시피 이 회사는 스웨덴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의 가구 제조 및 유통 업체다. 가격은 다른 업체보다는 저렴하지만(필자는 동의하지 않지만) 간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미국, 유럽, 및 중국, 홍콩, 일본 등 전 세계 약 37개국에 3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가구업체다.
물 한 잔을 마시며 곰곰이 와이프 전화 내용을 되짚어 보니, 택배를 그냥 잘 받아놓으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자기가 없을 때 잘 조립해 두라는 말이었다.
이 제품은 특이하게도 모든 제품을 고객이 직접 조립해서 쓰라는 DIY(Do It Yourself) 방식이기 때문이다. 크고 기다란 택배 그 속에는 조립 방법을 적은 누런 종이 한 장이 달랑 들어 있다!
조립을 즐기는 보통의 남자들과 달리, 어릴 때 프라모델(조립 모델 장난감이다. 프라모델은 ‘플라스틱 모델’의 일본식 줄임말이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게 좋다. 우리 어린 추억에 일본풍이 깊숙이 개입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하나 제대로 완성시켜 본 경험이 없는 필자로서는 아주 힘든 시험지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1974년 배포된 회사의 첫 카탈로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진열장에서 원하는 것을 스스로 꺼내세요. 그리고 힘이 약한 여자라도 쉽게 끌 수 있는 실용적인 매장 카트에 실으십시오’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이건 남자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케*가 고객에게 떠넘긴 짐은 결코 만만치 않다. 80cm 넓이의 ‘빌리’라는 이름의 책장만 해도 무게가 43kg이나 나간다. 코너 책장은 50kg 정도이다. 길이가 2m 조금 넘는 유리 장식장은 무려 85kg에 육박한다.
이걸 카트에 싣고는 집에 가서 알아서 조립하라는 말이다. 남자도 쩔쩔 맬 정도인데 여자도 할 수 있다니 이건 유럽식 유머인지 뭔지 모르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카탈로그 그 밑에는 상당히 대담하고 과격한 문구도 적혀 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의 조립설명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 얼마나 무섭고도 무서운 말인가. 카탈로그에서 말한 대로 가구 조립품을 카트에 실었으면 이제 집에들 가서 직접 조립을 하라는 말이다.
필자는 연약한 여자도 아니고 글자도 잘 알고 있지만, 도저히 종이에 적힌 대로 조립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걸 확인하는데 두 시간 반이나 걸렸다. 결국 늦게 집에 돌아온 와이프가 가구를 완성한다. 한쪽에서 열 받아 있는 씩씩거리는 필자의 눈치를 봐가면서 말이다.
과격한 표현이라 죄송하지만 정말 열(!)받는 건, 이런 일련의 과정이 다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미 집집이 이런 그림이 그려질 것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전략이라는 거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식구’가 된 식탁이나 책장은 그냥 가구가 아니다.
만들면서 정이 들어버렸으니 가구는 과학이 아니라 높은 만족도와 강한 애착 관계가 된다.
마치 반려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사랑스럽고 애착이 가는 관계 말이다. 이것을 ‘이케아 효과(IKEA Effect)’라고 부른단다.
자신이 직접 조립한 제품이니까 더 많은 애착을 가지며, 품질과 기능은 떨어지더라도 더 높은 만족도를 가진다고 한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은 가족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