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4시 10분 현재 제18호 태풍 ‘차바’가 할퀴고 간 상처를 수습 중인 감포읍 대본1리 마을. 마을 앞 도로에는 집중호우로 인해 주택 방안까지 침수돼 사용할 수 없는 가재도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지 6일째지만 이날따라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흐린 날씨에 젖은 이불조차 말리지 못하고 있는 주민들은 하늘만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5일 오후 늦게부터 경주시, 월성원자력, 심지어는 전주시 봉사대까지 찾아와 침수피해를 입은 이곳 마을에서 복구활동을 펼쳤지만, 남은 정리까지 완전히 마무리하기에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주민 A씨는 “이번 주택침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인재”라며 “방안 가득 물이 들어와 TV, 냉장고, 에어컨 등 전자제품만 2000만원 정도의 피해를 봤다”고 푸념했다.
이번 태풍 ‘차바’의 내습으로 50여 가구 중 절반 가까운 20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은 이곳 주민들은 이번 사태를 인재로 규정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 가운데를 가르는 폭 약 6여m, 길이 600여m의 가곡건천은 평소 물이 없다가 비가 오면 뒷산 계곡에서 흘러들어 온 빗물이 바다로 빠져 나간다.
이곳에 지난 5일 집중호우로 인해 하천에 빗물이 가득 찬 것은 11시 21분경, 그리고 40여 분 뒤인 12시 7분경 범람을 시작해 저지대에 있는 주택부터 침수되기 시작했다. 물이 넘치자 주민들은 모두 대피해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물이 범람한 이유로 주민들은 도로 밑 이련박스를 설치하면서 이를 지지하고 있는 교각을 지목하고 있다. 하천 폭이 6여m이지만 도로 밑은 교각이 하천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폭이 양쪽으로 3m씩 갈라져 있다. 폭이 좁아진 이곳에 집중호우로 산에서 떠내려 온 나무와 나뭇가지, 마을에 설치된 호수 등이 걸리면서 물 흐름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바다로 빠져나가야 할 빗물이 넘쳐 주변 주택을 덮쳤다는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복구 작업을 하면서 15톤 트럭 4대 분량의 잔해물 등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도 주민들의 증언이다. 주민들은 또 지난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도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주택 마당까지 차올랐다는 것.
주민 B씨는 “과거 하천이 범람해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음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이번에 큰 피해를 초래했다”면서 “가전제품 뿐만 아니라 담장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며 우울해했다. 또 “오후 2시 30분경 비가 약해져 그나마 이정도지 만약 더 내렸다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인한 주택침수 사태가 인재인 만큼 경주시의 근본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도로 관리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소관업무로 협의를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교량 폭을 넓히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감포, 양남, 양북, 외동 피해 집중
한편 제18호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4일부터 5일까지 경주시 평균 강우량은 81mm였다. 외동읍이 226mm로 가장 많았고, 안강읍이 67mm로 최저 강우량을 보였다.
특히 태풍으로 인해 감포읍, 양남면, 양북면과 외동읍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태풍피해로 2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은 38세대 68명이 발생했다. 외동읍 15명, 감포읍 9명, 양북면 8명, 양남면 6명으로 나타났다.
공공시설은 총 99건으로 하천 33개소, 도로 18개 노선 26지구, 수리시설 2개소, 산사태 4개소(외동 1, 양북3) 등이 피해를 입었다. 사유시설로는 건물 침수 53동(감포 30, 외동 10, 양남 9, 양북 3, 황남 1), 농경지 98ha가 매몰 또는 유실됐다. 농작물 침수 80ha, 공장 28동이 침수 또는 지붕파손, 토사유입 등의 피해를 입었다.
경주시는 13일 공공시설, 17일까지 사유시설 피해를 파악한 후 국민안전처에 등록할 예정으로 향후 피해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태풍피해가 예상보다 크자 경주시는 6일부터 공무원과 군·경, 자원봉사자 등과 합동으로 복구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2일 현재 민관군경 누적인원 8600여 명, 1일 1200여 명이 피해현장을 찾아 복구 작업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