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각기관은 지속적인 감각에 둔해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악취도 지속되면 점점 그 악취에 둔감해지고, 소음도 일정 레밸이하의 지속적인 소음은 차츰 귀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지진다운 지진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땅의 흔들림에는 전혀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최근의 강진과 지속되는 여진으로 몹시 당황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이후 만일 수 개월 이상 여진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차츰 약한 흔들림 정도에는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아예 무감각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늑대와 양치기 소년’ 의 효과일 수도 있는데, 지진을 처음 겪을 때는 별것 아닌 진동에도 화들짝 놀라 집밖으로 뛰어나가던 사람들도, 대피와 복귀를 반복하면서, 점점 위험감지 감각이 무디어 지고, 나중엔 왠만한 흔들림에도 별일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버티어 보자는 배짱까지 생기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자연은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무서운 역습을 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지진 안전지대임을 믿던 우리에게 이번 지진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재난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나 기관을 탓해본들, 그리고 천하없는 전문가 박사님들을 모셔와 봐야 당장 무슨 중뿔난 대책이 있을 리도 없다. 재난 대비는 우리 모두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안전의식을 키워나가는 것이 바로 자신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사람이 급박한 상황에 처하였을 때는, 평소 간과하고 있던 사소한 지식이나 보잘 것 없는 소지품 하나가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인터넷을 뒤지면 재난대비 관련 매뉴얼이 넘치고 넘쳐나는 데, 또 한 편에선 박사님들 모셔다 놓고 새로운 매뉴얼을 만든다고 난리법석들이니, 이제 사람들은 과연 그 많은 매뉴얼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스럽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좀 유경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작 위급시에는 그렇게 복잡하고 많은 매뉴얼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아주 기본적인 행동요령을 반복적으로 훈련하여 반사신경적인 대응능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정말 극단적인 환경에 놓였을 때, 생존을 위해 무엇이 꼭 필요한가를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 예상 가능한 대형 재난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러나 틀림없이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비난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이후에도 지진이 계속 이어진다면 대규모 이재민 발생 등 정말 무서운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으며,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그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재난에 설마는 없다는 생각으로 평소에 만반의 준비를 해두면, 오히려 불안감이 사라지게 되고 또 혹 있을 지 모르는 최악의 사태 시에도 허둥대지 않게 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최근, 일본 남쪽 해저 단층대에서 진도 9의 지진이 발생되었을 시, 어떤 피해가 발생될 수 있는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시뮬레이션 영상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공개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일본 남부가 초토화 되고 무려 수십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는 그 끔찍한 프로그램을 왜 거액을 투자하여 제작하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