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지진의 여파가 예사롭지 않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한옥 지붕이 많이 파손되었다. 벽에 금이 가거나 유리창이 깨진 건 흔한 피해다. 400여 차례의 여진은 이른 바 지진 트라우마(trauma)를 낳았다. 최근에는 지진 괴담이 기승을 부려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마침내 정부는 지진 발생 열흘 만에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지진피해 복구가 진전되고, 다행히 여진이 잦아들어 경주시민들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관광업 종사자들은 여전히 악몽 속을 헤매고 있다. 가을 성수기의 단체관광객들을 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재작년에는 세월호, 작년에는 메르스, 올해는 지진이다. 관광도시 경주에 3년 연속 치명상을 입혔다.
한마디로 관광 경주가 패닉 상태다. 전대미문의 경기침체다. 필자는 이럴수록 난국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많다. 지역 언론은 관광경기 활성화라는 대의명분에 뜻을 모아 ‘경주방문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경주시의 간부급 공무원들은 ‘안전한 경주’를 알리기 위해 서울까지 다녀오는 열성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3일부터 9일까지 7일간 열리는 ‘2016 신라문화제’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원래 축제는 구성원들의 대동단결(大同團結)을 위해 생겨났다. 대동단결은 말 그대로 ‘크게 하나로 뭉치는 것’이고, 작금의 경주에 가장 필요한 일이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의 시름을 잊고 일단 뭉쳐야 한다. 그래야 외지인들이 경주에 찾아온다. 논어에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고 하지 않던가.
지난 3일 봉황대에서 국가의 안녕과 통일을 기원하는 ‘서제’를 시작으로 7일 본격적인 개막식 행사가 진행됐다. 신라고취대 식전공연과 공식행사 뒤 봉황대 특설무대에서는 주제 공연인 국악 뮤지컬 ‘처용’의 막이 오른다. 100여 명이 넘는 출연진이 참여하는 성대한 무대로 국민 화합과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다.
한편 8일, 경주의 심장인 화랑로에서 펼쳐지는 길놀이는 경주인들의 대동단결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퍼포먼스다. 당일 경주역에서 중앙시장 네거리에 이르는 길이 전면 통제된다. 1부는 시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열린 퍼레이드’로, 2부는 신라군과 당나라군 사이의 매소성 전투를 담은 ‘집단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길놀이 1부 ‘열린 퍼레이드’는 초저녁에 200여명의 초대형 풍물단을 따라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신명나게 행진하는 참여형 행사다. 거리퍼레이드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라시대 복장 및 코스프레 의상을 무상으로 대여해 준다. 경주를 찾은 여행객 누구나 시공을 뛰어 넘어 신라시대로 돌아가는 경험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색 퍼레이드의 금상 수상자에게는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도 지급된다.
길놀이 2부 ‘집단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화합의 무대다. 매소성 전투의 승리는 신라 삼국통일의 단초이자 우리 한민족의 진정한 평화를 의미한다. 통일은 화합의 메타포(metaphor)이자 우리 민족이 추구해야하는 지고지선의 가치이다. 전국 최초로 시도하는 거리 전투 씬을 통해 여러 가지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서로의 마음과 뜻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다지고 나아가 남북통일의 희망까지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2016 신라문화제는 경주시에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축제 본연의 대동정신을 발휘해 보자. 그리고 상부상조의 전통미덕을 실천해 보자. 그러면 정신적 외상을 입은 자가 치유되고, 위기에 빠진 지역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돈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문화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