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송찬호 드럼통 반 잘라 엎어놓고 칸나는 여기서 노래를 하였소 초록 기타 하나 들고 동전통 앞에 놓고 가다 멈춰 듣는 이 없어도 언제나 발갛게 목이 부어 있는 칸나 그의 로드 매니저 낡은 여행용 가방은 처마 아래에서 저렇게 비에 젖어 울고 있는데 그리고 칸나는 해질 녘이면 이곳 창가에 앉아 가끔씩 몽롱 한 잔씩을 마셨소 몸은 이미 저리 붉어 저녁노을로 타닥타닥 타고 있는데 박차가 달린 무거운 쇠구두를 신고 칸나는 세월의 말잔등을 때렸소 삼나무 숲이 휙휙 지나가버렸소 초록 기타가 히히힝, 하고 울었소 청춘도 진작에 담을 넘어 달아나버렸소 삼류 인생들은 저렇게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초로(初老)를 맞는 법이오 여기 잠시 칸나가 있었소 이 드럼통 화분에 잠시 칸나가 있다 떠났소 아무도 모르게 하룻밤 노루의 피가 자고 간 칸나의 붉은 아침이 있었소 --이 땅의 ‘삼류 인생’에게 바치는 먹먹한 헌사 가을이면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칸나는 인생을 빗대기에 적합한 식물이다. ‘데와다드’라는 악마가, 불타를 몹시 시기한 나머지 죽이려 마음먹고, 불타가 잘 다니는 길가 언덕 위에 큼직한 돌을 들고 숨어 있었다. 그런 일을 전혀 알 리 없는 불타가 그 언덕 아래를 지나다 별안간 날아온 돌에 발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땅 위를 적시고 피에 젖은 땅에서 붉은 칸나가 피어났다. 미얀마에 전승되는 전설이다. 동화적 상상력을 갖고 있는 이 시를 읽는 일은 유쾌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우리네 장삼이사의 생이 아련히 떠올라 먹먹하다. “잠시 있다 떠난” 어떤 생을 기억하기에 알맞은 객관적인 느낌을 주는 격식체 ‘하오’체를 쓰고 있다. 드럼통 화분에 심겨진 칸나는 삼류 가수로 비유된다. 우리는 칸나를 무명 시인이라 읽어도 되겠다. “가다 멈춰 듣는 이 없어도 언제나/발갛게 목이 부어 있었다”니, 알아주는 이 없어도 열정적으로 글을 썼을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해질녘이면 그는 더러 술을 마시며 발갛게 취하기도 했을 것이다(“해질 녘이면 이곳 창가에 앉아/가끔씩 몽롱 한 잔씩을 마셨소”). 그러나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세월은 지나가고 청춘은 사라져가고(“삼나무 숲이 휙휙 지나가버렸소 ……청춘도 진작에 담을 넘어 달아나버렸소“),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초로(初老)를 맞는“ 신세가 된다. 그것을 시인은 ”여기 잠시 칸나가 있었다“고, ”칸나의 붉은 아침이 있었다”고 냉정한 어투로 잘라 말한다. 칸나가 피었다 지는 사이, 우리의 생은 짧게 스러져 가는 것이다. 시인들뿐이겠는가. 이 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동전통 앞에 놓고” 일하는 이 땅의 삼류 인생 모두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닐 수 없다.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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