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실험이 실제 미국 대학에서 있었다. ‘감옥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다. 이걸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스탠포드 감옥 실험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2015)’이 그것이다.
감옥 생활의 심리적 연구 실험에 참여할 남자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로 영화는 시작된다. 스탠포드 대학 내 강의실과 복도를 이용하여 감방을 재현한다. ‘출입금지’나 ‘스탠포드 자치 교도소’라고 쓴 흰 종이를 벽에 붙이는 수준이지만 나름 그럴싸한 교도소가 마련되었다. 이젠 등장인물이 등장할 차례. 누가 죄수가 되고 누가 교도관이 될지는 동전으로 결정했다.
교도관은 미 정부를 대신하여 소속감을 상징하는 유니폼과 경찰봉, 권위를 상징하는 선글라스가 지급된다. 반면에 죄수는 죄수번호가 왼쪽 가슴에 선명한 죄수복이 지급된다.
죄수 역할을 맡은 알바생들은 시작부터 마치 법을 어긴 죄인마냥 등장한다. 어린 동생하고 같이 한가롭게 세차를 하던 한 지원자는 진짜(!) 경찰차에서 내린 진짜 경찰이 동생 앞에서 자신을 연행하니 좀 의아해 하긴 했지만 경찰차에 몸을 실으면서도 입은 웃고 있다. 하루 일당 15달러짜리 알바이니까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교도소 내부다. 서로 어색하고 긴장한 모습이지만 죄수는 입고 온 옷을 벗고, 교도관은 위생상의 절차라며 벗은 죄수 몸에 에프킬라 같은 걸 뿌린다.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소꿉장난이라도 하는 듯 한 분위기다. 갓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훈련병들 기분이 이렇겠지? 앞으로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도 못 하고 순진한 웃음만 짓는 훈련병들 말이다.
점호를 한다고 죄수들을 일렬로 세워 놓는다. 시작은 그저 장난이다. 자신의 번호지만 익숙지가 않다. 번호를 부르다 틀리니까 집중하라면서 앞에서 뒤로 또 뒤에서 앞으로도 시켜본다. 그러다 점점 심각해진다. 이제 노래까지 시킨다. 죄수들도 시키는 대로 따라 부른다. 음이 너무 높다고 죄수 하나가 부르길 꺼려하자 벌로 팔 벌려 뛰기를 시킨다. 장난으로 시작한 그 모든 행동들이 갈수록 강도와 난이도가 높아진다. 터무니없는 이런 장난(?)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한 죄수는 독방에 감금당한다. 다른 죄수들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다.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말도 안 되는 주간조 교도관의 무용담을 들은 야간조는 더욱 악랄하게 죄수들을 압박한다. 팔 벌려 뛰기에다 윗몸 일으키기 등을 하나씩 추가된다. 죄수는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고, 교도관들도 비열한 웃음은 제법 자리를 잡아간다. 너무 심하다는 죄수들과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교도관들은 우연히 폭력을 휘두른다. 계약상 폭력은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힘을 가진 교도관은 묵살하고 힘없는 죄수들은 끙끙 앓을 뿐이다. 우연히 시작된 폭력은 매우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 되었다.
강의실로 만든 감옥은 억압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완전한 그것이 되어 버렸다. 실험이 시작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다. 예상 못한 이 상황에 난감한 연구자들은 개입을 요구했지만, 실험을 디자인한 교수는 실험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일단 두고 보잔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게 뻔한대도 말이다.
실험은 감춰진 인간 본성 그 정체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죄수 역할을 하게 된 그들은 점점 이 실험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죄인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교도관들도 이들은 억압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동전 앞뒤의 면으로 결정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되어 버렸다. 실험은 결국 6일 만에 강제 종료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인생을 너무나 쉽게 남에게 맡겨 버린다는 사실에 그랬다. “그렇게 하지 마, 내가 왜 그걸 따라야 하지? 누구도 나를 통제할 수는 없어” 한 마디면 처음부터 안 일어날 실험이고 현실이었을 일이다. 악한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어리석은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