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그 어떤 존재로부터 일시에 만들어졌을까? 혹은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어떤 영장류가 오랜 시간 진화를 거듭하여 현생 인류가 된 것일까?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가까운 미래에도 그 결론이 쉽게 나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창조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창조론이 비과학적이라고 하고, 진화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 그런데 진화론이란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이론이 아니다. 이 이론을 정확히 말하면 원숭이가 아니라, 침팬지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맞다. 침팬지나 원숭이나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원숭이와 침팬지는 엄연히 다른 동물이다. 원숭이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어느 동물원이나 원숭이는 있다. 그만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짐승이다. 외모는 어떨까? 작고 정신없이 소리 지르는, 약간은 경망스러운 느낌.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숭이를 흔히 비하한 일본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비하된 대상은 사실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침팬지는 다르다. 필자는 대전의 큰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무척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침팬지 우리의 아랫부분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고, 윗부분은 일반적인 금속으로 된 울타리였는데, 침팬지 한 마리가 윗부분에 매달려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과자를 받아 먹고 있었다. 덕분에 침팬지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사람과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특히나 침팬지의 손은 손톱, 손가락, 주름까지 영락없이 사람의 손과 비슷했다. 땅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침팬지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의 피부색이 흰 편이어서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흑인이라면, 게다가 날씨가 더워 옷을 잘 입지 않고 있다면, 사람과 침팬지를 혼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침팬지는 원숭이처럼 경망스럽지도 않은데다 무척이나 점잖다. 오랜 시간 우리에 갇혀 지낸 동물을 고작 몇 분 보고 나서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무척이나 부끄럽지만, 원숭이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인간의 털로 돌아오자. 영장류가 인간으로 변했는지 아닌지를 떠나, 인간도 영장류의 한 아종이라고 할 만큼 닮아있는 것도 사실인데, 특이하게도 인간에게는 털이 없다. 영장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다. 분명히 인간도 처음에는 털이 많았을 것이다. 인류의 조상을 그린 그림에는 전신이 검은 털로 뒤덮인 동물을 그려놓았다. 우리에게도 많았던 털이 왜 사라진 것일까? 또 사라지려면 전부 다 사라질 것이지, 머리와 겨드랑이, 사타구니의 털은 왜 여전히 남아있는 것일까? 알리스터 하디(Alister Hardy)라는 영국의 젊은 해양학자는, 아득한 옛날 인간은 물에서 생활했다는 수생인간설(水生人間說)을 주장했다. 우리 몸은 유선형이고,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수영을 할 수 있으며, 손과 발에는 물갈퀴의 흔적이 있고, 지나치게 땀을 많이 흘리고 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염분의 배출이 많으며, 또 우리 피부 속의 추위를 이길 수 있는 피하 지방층은 물속 생활에 적합하다는 등의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많다. 고래는 그런 점에서 그의 좋은 모델이 되어줬다. 고래는 육지에서 살다가 경쟁을 피해 물로 들어간 포유류인데, 허파로 숨을 쉬며 뒷다리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좋은 증거이다. 또 인간에게는 과거에 분명히 있었던 꼬리가 퇴화되어 없어진 것도 꼬리 달린 물고기가 없듯이 물속에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스스로 퇴화해 버린 것은 아닐까? 사람도 고래처럼 물속에서 지내다 숨을 쉬러 뭍으로 살짝 올라왔다고 하는데, 숨을 쉬기 위해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면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머리 부분이 자외선에 무방비로 노출되니 머리의 털은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무척이나 그럴듯하고, 또 호기심도 불러일으키는 가설이다. 사람이 사실 바다에서 살았다는 주장은 1960년경에야 나왔지만 현재 많은 다른 학자들이 동조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맹점도 많다. 그렇다면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의 털은 왜 남아있는 것인지? 수많은 영장류들 중에서 왜 하필 인간만 물로 들어간 것인지, 그리고 왜 다시 물을 포기하고 뭍으로 돌아온 것인지? 열대 기후의 사바나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든다. 사자나 표범 같은 육식 동물은 온 몸이 가죽과 긴 털로 뒤덮여있는데, 이 두꺼운 가죽 코트는 열대 기후의 사바나에서 어떤 역할을 해줄까? 사실 영상 50도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기온의 대낮에 움직이는 동물들은 그다지 없다. 초식 동물이나 육식 동물이나 낮에는 되도록 휴식을 취한다. 사자들은 보통 강한 햇볕을 피해 사냥을 아침과 저녁 시간에 한다. 밤에는 어떨까?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온도가 10도 대까지 떨어지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낮에는 덥지만 밤을 위해서라도 두꺼운 가죽과 털은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은 왜 그 털가죽을 버렸을까? 햇볕이 약해지는 아침과 저녁 시간이 사냥하기가 가장 좋다. 그렇지만 감히 인간이 사자와 같은 대형 육식 동물과, 같은 시간에 같은 사냥감을 찾아다니며 맞대결을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경쟁을 피해 대형 육식 동물이 휴식을 취하는 대낮 시간을 먹잇감 구하는 적기로 삼았을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털가죽이 점점 얇아지고 온도가 떨어지는 밤에는 무리를 지어 체온을 유지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신체 부위인 머리에는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털이 여전히 남아있게 되었고, 심장과 폐로 연결되는 아주 약한 부위인 겨드랑이도, 중요한 생식 기관을 보호하는 사타구니도, 비슷한 이유에서 털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두 다리로 서면서 나무를 보다 잘 오르내리게 되었는데,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의 털은 팔이나 다리를 올렸을 때 특히 그 부위를 잘 보호할 수 있었다. 목욕탕에서 탕욕을 하고 나면, 또 물놀이를 하고 나면 왜 배가 고플까? 활동을 많이 해서 배가 고프다는 말은 그리 납득할 만하지 않다. 마라톤과 같은 운동은 아무리 해도 배가 고프기는커녕 오히려 입맛이 더 달아나버리니. 사실 그 이유를 필자 역시도 수생인간설에서 찾고 싶었다. 본래 물에서 살았기에, 우리는 아직도 물을 그리워하면서 물속에 들어가면 신체 기관들이 그것을 더 반기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다. 수생인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호모 아쿠아티쿠스(homo aquaticus)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정식 학명이 아니다. 그저 그랬으면 하는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물을 그저 바라만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동경의 대상으로 여겼고, 물은 그런 인간을 항상 말없이 받아주기만 했었나 보다. 김민섭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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