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1일 입법예고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제정(안)에 대한 마감 기간인 9월 19일을 앞두고 경주사회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이 법률안은 지난달 25일 확정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차질 없이 실행하기 위해 부지선정 절차 등을 중심으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정부가 입법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 기본계획에 대해 경북도의회 원전특위와 경주시의회에서 반대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향후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이번 법률안 추진은 그동안 고준위방폐장 설치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정책을 시행했지만 결국 일방적 추진이란 비판을 받는 등 한계에 봉착한 것이 가장 큰 사유로 보여 진다. 법적근거를 통해 약속이행 의지를 보이겠다는 의도다.
이번에 입법예고한 관리절차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부지선정 절차 마련(안 제12조부터 제15조), 부지선정 업무의 실행기구로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 설치 운영(안 제5조부터 제11조), 지역지원에 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는 ‘유치지역지원위원회’를 국무총리소속으로 설치(안 제16조), 안전하고 체계적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도모(안 제18조부터 제19조) 등이다.
특히 이 가운데 그동안 정부가 정책에서 가장 실패 요인으로 분석했던 부지선정문제에 대해 한발 물러난 것을 명문화한 것은 고민한 흔적이 있어 보인다. 법률안에는 5단계의 부지선정 절차를 정했는데, 부지 선정단계부터 주민들의 뜻을 반영해 적합성을 살펴 안전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여기에 객관성과 전문성을 담당할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지역지원에 관해 심의하는 국무총리소속의 ‘유치지역지원위원회’를 둔다는 것도 신뢰를 보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법률안에 대해 정부가 상당한 고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시민들뿐만 아니라 원전지역민들이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고 반대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정책추진 과정에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 쌓여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법률안을 보면 결국 주민들이 알아서 논의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인 것 같은데, 그동안의 전례로 보아 자칫 지역 내 또 다시 갈등의 불씨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특히 지난 2005년 중저준위방폐장 유치당시, 중저준위방폐장을 유치하는 지역에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련시설을 둘 수 없다는 ‘중저준위방폐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제18조)’가 있음에도, 이번 법률안에는 경주가 고준위방폐장 설치 대상 지역이 아니라는 어떠한 내용도 없다는 것은 경주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정부가 원전과 방폐장 등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도적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투명성과 소통부재, 약속 불이행 등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직 원전과 관련한 사업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정서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고, 야당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이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만은 않겠지만, 만일 이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실행과정은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는 이 법률안의 통과여부를 떠나 적어도 이번에는 중저준위방폐장 결정 당시 경주시민들에게 한 약속 중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행 약속을 먼저 해야만 그나마 정부가 원하는 소통의 장이라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