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과부적(衆寡不敵)/김사인 조카 학비 몇 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 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하신다. 다시 자동차세와 통신 요금을 내고 은행카드와 대출할부금 막고 있는데 오래 고생하던 고모 부고 온다. 문상 마치고 막 들어서자 처남 부도나서 집 넘어갔다고 아내 운다. ‘젓가락은 두 자루, 펜은 한자루…… 중과부적!’※ 이라 적고 마치려는데, 다시 주차공간미확보 과태로 날아오고 치과 다녀온 딸아이가 이를 세 개나 빼야 한다며 울상이다. 철렁하여 또 얼마냐 물으니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 성을 낸다. ※ 마루야마 노보루 「뤼쉰」에서 빌려옴 -말의 변신으로 잡아낸 우리네 일상 한국사회에서 결혼을 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신경 써야 할 가족이 하나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돈 들어갈 데가 많아진다는 말과 같은 동의어다. 중년에 이르면 감당해야 할 몫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장성한 자녀들은 물론이고 만년에 이른 양가 부모, 그 외에도 소소하게 돈 들어가야 할 데가 어디 한 두 군데던가. 시인은 예기치 않게 돈 들어갈 일만 쌓이는 현실을 ‘중과부적’이라 표현한다. 말의 변신이 놀랍다. 군사용어 ‘중과부적’이란 이 쪽과 저 쪽의 수가 비교가 되지 않아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전투 상황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그 상태가 되면 전투에서 이기기란 어렵다. 이기기는커녕 힘도 써 보지 못하고 패하기 십상. 이것 막아놓으면 저것 터지고 또 예기치 않게 터지고 터지고 ……. 돈 쓸 데는 떼로 나타나서 우리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 시는 바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 중년의 일상을 개성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 개성의 모습은 앞서 말한 제목에서 우선 드러나고, 두 번 째가 실감을 유발하는 분연(分聯)과 현재형 시제로 드러난다. 특히 돈 쓸 데가 자꾸 나선다는 말은 연결형 어미와 부사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배가되는데, 끝부분 “철렁하여 또 얼마냐 물으니/제가 어떻게 아느냐고 성을 낸다.”에서는 해학의 기미를 띠면서 극점에 도달한다. 어렵지 않은, 그러나 누구나 살아가며 실감하게 되는 ‘돈’ 문제를 고개 끄덕이며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겉으로는 근엄한 척 행동하지만 돈과의 전쟁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우리네 삶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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