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일봉 선생의 해석과 재평가는 본격적으로 이제부터다”, “더욱 많은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대와 희망만 가질 것이 아니라 꾸준한 전시와 학술 세미나 같은 실천이 병행돼야 실제에 합당한 평에 부합할 것이다” 지난 20일, (재)경주문화재단은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경주가 낳은 천재화가 손일봉(1906~1985) 선생의 탄생 110주년을 맞이해 그를 재조명하기 위한 ‘손일봉 탄생 11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윤범모 예술총감독이 좌장을 맡고, 네 명의 미술평론가 및 사학자가 발제자로 나서 발표하고 종합 토론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권원순 계명문화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손일봉’을 주제로, 조은정 한남대 대학원 겸임교수는 ‘손일봉의 작품세계’를, 김영동 미술평론가는 ‘영남지역 중심으로 살펴본 손일봉의 작품 활동과 영향력’을, 최 열 미술평론가는 ‘손일봉의 초기 활동과 역사상 위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날 세미나에는 선생의 막내딸인 손도자씨와 실제 선생 작품의 모델이기도 했던 제자 허영숙씨가 질의응답 시간에 참여해 선생의 체취와 작품을 이해하고 선생의 삶과 작업을 더욱 가까이서 증언하는 자리여서 세미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조선스런 인상파 화풍의 개척자’ VS ‘기교로는 제일인데 색에 대해선 매우 변통없이 고집’ 권원순 계명문화대 명예교수는 “이번 전시회와 세미나를 통해 다소 때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근대미술사에 사실주의 선구자로 큰 족적을 남긴 선생에 대한 작가적 조명과 평가가 이뤄져 한국근대미술사에 리포지션(reposition)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은정 한남대 대학원 겸임교수는 선생의 작품을 세상의 흐름이나 유행과 거리를 두고 자연을 탐닉하는 자세라고 볼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 “선생은 눈 앞의 모든 것을 기록해 나갔으며 그것은 바로 첨성대이기도 했고 그저 집 앞의 산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의 존재성이었기에 작가가 관여한 것은 단순화한 형태와 화면의 담백한 표면과 순간에 포착된 색조였다. 세잔이 이룩한 색채원근법을 넘어서 대상의 하나하나가 빛나는 현실을 화면에 재생하는데 손일봉이 성공했음을 본다. 이는 선생의 화면을 일러 사실의 정신이라고 하는데 주저 할 필요가 없다는 대목이다”고 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는 “경주 유년시절에서 경성 사범 재학시절까지, 동경 미술학교와 일본에서의 체류 시기, 해방공간에서 한국 전쟁까지(경주예술학교장, 계성학교 교사, 한국 전쟁의 종군 화가), 교육자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삶, 퇴직 후 대구서 보낸 말년(한유회 창립, 작고 이후 그의 영향)등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뛰어나고 완벽한 시각, 빈틈없는 구도는 그의 작품이 아카데믹한 작품으로 더욱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손 화백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표현을 인용하면서 손 화백이 이전의 작품을 대량으로 개작했다는 부분은 만족할 때까지 완전함을 추구하는 태도라 보았다. “그의 영향력은 작품의 전개와 깊이를 통해 시각적 통찰이 가능한 누구에게라도 미학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열 미술평론가는 선생의 조선미술전람회 시기의 몇 몇 신문들의 기사(‘기교로는 제일인데 색에 대해선 매우 변통이 없이 고집했다. 이는 기교에서의 묘를 얻고 있지만 아직 어려서 서투르다’, ‘결국 기교의 묘와 좋은 작가가 될 희망이라는 것’으로 당시 비평가들이 압축했다)를 인용하고 동경미술학교 시절의 그에 대해선 비평가들이 ‘경주가 낳은 청년 화가로서 장래에 촉망이 많다’고 평했다고 전했다. 또, ‘손일봉 그 미술사에서의 좌표’에서는 “손일봉은 특별한 계보 없이 관학파 무대에 진출해 유화 도입기를 풍부하게 만들어간 조선스런 인상파 화풍의 개척자로서 지난 20세기 한국 미술사상 손일봉의 위치를 논의할 수 있는 자리의 위상을 논의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질의응답 시간에는 구상과 비구상적 작업의 시도가 혼용되는 것에 대한 여러 질문에 대해 김영동 평론가는 “세잔을 추구한 선생은 실물을 그대로 그리는 사실보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사실에 대한 회의를 가졌고 사실과 추상의 중간 지점을 모딜리아니로 본 것 같다. 그의 목표는 모딜리아니까지였다. 시행착오를 겪고 그 답을 얻기 위해 집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란 것 같다. 말년에 교육계에 머물렀던 시기 즉, 작품 휴지기에 대해 후회한다고 한 대목이 이를 방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손일봉 선생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연구 지속돼야” 이번 세미나는 경주문화재단이 경주예술의전당 전시장들을 ‘알천미술관’으로 등록한 뒤 알천미술관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한 기획 전시 일환의 한 시도로서, 지난해 박목월 시화전을 시작으로 올해 두 번째 기획 전시로 손일봉 탄생 110주년 기념전과 세미나를 연 것이다. 이번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기획전으로서의 손일봉 선생 전시 및 학술세미나의 발화점으로는 포항에서의 전시와 세미나가 촉매작용을 했다. 2014년 3월, 포항시립미술관측은 지역 미술사·지역 출신 화가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취지로 ‘영남 구상를 미술 시원과 태동’을 주제로 한 전시와 세미나를 가진 바 있다. 이 전시와 세미나에서 영남 구상화가의 주역으로 손일봉을 비롯한 김만술, 손수택 등을 꼽았다. 경북미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주예술학교’와 ‘경북미술협회’를 비롯해 경북화단의 밑거름이 된 2세대, 3세대 작가들에 대한 발굴과 조명 또한 심도있게 전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바 있었다. 이후 경주솔거미술관에서의 ‘경주 미술의 뿌리와 맥 7인’전으로 연계돼 확장된 전시(근현대 1세대 작가 7인의 아카이브와 함께)가 이어졌고 경주 사회에서 잊혀질 뻔했던 1세대 혹은 1.5세대에 대한 관심의 회귀와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그 열기가 이번 전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기획 전시의 정확한 주제 분류나 전시 컨셉의 포커스 등 큐레이팅의 적확한 적시의 부족으로 대형 전시의 길라잡이 역할이 다소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학술 세미나 역시 좌장 선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더욱 연구를 많이 한 전문 비평가를 초빙해 주제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등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내면적 감정표현과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근현대 1세대 작가로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손일봉 선생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연구가 지속돼야 한다는 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 고무적인 사항도 있다. 한 작가를 기획 전시해 조명 한 예가 드물었던 차제였고 집중적인 학술세미나도 첫 시도라는 점이다. 향후, 이번 세미나에 이어 손일봉 평전을 제작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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