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그렇고 물고기도 그렇고, 집단을 이뤄 헤엄치고 날아다니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낙오자 하나 없이 똑같이 움직이고, 방향을 틀며, 헤엄치는 걸까?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반장도 없고 그저 앞뒤로 동료들로 둘러싸여 날아가는 그들이 대화를 통해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데 말이다. TV에서 마치 군무를 추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 안 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조류전문가 에드워드 셀루스도 그랬다. 그는 수많은 새들이 마치 완벽하게 호흡에 맞춰 군무를 추듯 나는 모습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들이 보여준 일치된 행동은 어떤 면에서 새들은 집합적 두뇌(collective brain)를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후 과학계가 밝혀낸 증거에 따르면, 1930년대의 그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밝혀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동물에도 보인다. 흰개미의 경우, 직설적으로 표현해 흰개미 한 마리는 극도로 멍청하다고 한다. 그 개별 두뇌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물리적 신경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흰개미 백만 마리는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물을 거뜬히 올릴 만큼 놀라운 집합적 두뇌의 힘을 발휘한다. 실제 흰개미들이 뚝딱 만들어 내는 집의 높이는 9미터를 넘기도 한다고... 이러한 행동 패턴은 동물에 비해 단연코 우수한 뇌를 가진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 2008년 리즈(leeds) 대학의 한 실험에서 연구팀은 피 실험자 그룹에게 넓은 실내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말이나 제스처를 주고받지 말고 그냥 걸어가라고 했다. 그런데 연구팀은 사전에 일부 피 실험자에게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하는지 세부적인 지시를 내려놓았고 이것이 포인트다. 실험 결과, 피 실험자의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방향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더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양이나 새들처럼 인간 또한 소수의 개인들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면서 무리를 형성한다고 보고했다. 여기에는 ‘정보를 지닌 개인들’이 단 5%만 있어도 200명에 이르는 군중들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나머지 95%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무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어느 길로 가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차량을 몰아야 할지부터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하는 배우자상(像)에 이르기까지 본인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살펴본다고 한다. 이런 습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심리를 동료압박(peer pressure)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뇌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할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해야만’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히트곡이든, 크리스마스 선물이든, 명품 핸드백이든 말이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대중가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의 주절대는 창법을 좋아하지 않는데, 우연하게 누가 수업 도중 그 노래를 언급한 것이다. 눈의 흰자가 과도하게 보일 정도로 그 노래와 그 가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여학우 뒤로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일제히 그 가수의 몸짓을 하면서 동류의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감히 그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동료의 압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어느 잡지에서 보니, 광고 대행사의 직원들은 모두 몰스킨이라는 브랜드의 가죽 다이어리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그 브랜드를 꼭 써야하는 이유도 없고 모든 광고인들이 그 정도로 획일화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문제는 광고대행사 플래너들 사이에는 그 제품이 일종의 불문율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이어리를 사용하지 않는 플래너는 ‘무리’에 끼지 못하는 이방인인 셈이다. 다른 사람이 모방하지 못하는 창의력이 밑천인 그들에게도 동료의 압박은 피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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