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여인, 선덕’, ‘최치원’, ‘만파식적’. 올해 경주시에서 제작한 뮤지컬이다. 셋은 신라의 역사문화자원 활용과 민간외주 제작에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공통점보다 더 많다. ‘별의 여인, 선덕’과 ‘최치원’은 실내 공연, ‘만파식적’은 실외공연이다. ‘최치원’은 유료 공연이지만, ‘별의 여인, 선덕’과 ‘만파식적’은 무료로 볼 수 있었다. 물론 제작비의 차이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을 관제(官制)뮤지컬이라고 부른다. ‘관제’란 용어에는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이는 민간제작사가 뮤지컬을 만들긴 하지만, 제작비를 지자체에서 대면서 생기는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을 말하는 것이리라. 최근에 경주시의 관제뮤지컬을 꼬집는 보도가 등장했었다. M방송사에서는 경주시의 ‘최치원’과 상주시의 ‘무인 정기룡’을 비교하면서 전자가 후자보다 제작비를 많이 썼는데도 성과는 오히려 반대여서 예산을 낭비했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예산 낭비 여부를 떠나 ‘무인 정기룡’은 실외무료공연이라 실내유료공연인 ‘최치원’과는 적절한 비교대상이 아니다. 상황이 이런지라 해당 보도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세상에 공연은 참으로 많지만 직접 비교대상이 되는 공연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무인 정기룡’과 ‘만파식적’은 같은 제작사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든 실외무료공연이라 상대적으로 비교하기 용이하지만,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는 거다. 그만큼 공연, 특히 뮤지컬 작품은 개별성이 강하다. 그렇다면 개별적으로 적용 가능한 평가기준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지자체의 예산(세금)이 투자된 ‘관제뮤지컬’에는 당연히 민간자본이 투자된 ‘상업뮤지컬’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필자는 관제뮤지컬의 평가 기준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이야기의 완성도다. 연극이든 영화든 뮤지컬이든 공연의 감동은 모두 탄탄한 이야기(구성)에서 나온다. 음악이나 조명이나 무대장치가 주는 미적 감동도 분명 존재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좋은 이야기가 뒷받침되지 않고 껍데기만 화려한 공연은 그야말로 ‘개 발에 편자’다. 상업뮤지컬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생존조건이다. 필자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야기를 갖고 살아남은 공연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야기 만들기는 전 제작공정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가중치가 높다. 철저하게 상업성이 지배하는 영화나 방송 드라마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그런데 관제뮤지컬은 어떤가? 이야기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이유는 지자체가 요구하는 막연한 주제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데 있다. 불과 수개월 안에 이야기 만들기부터 공연까지 모든 걸 해결해야한다. 민간제작사도 이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흥행 부진(매출)에 대한 위험을 대체로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제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두 번째는 지역예술역량의 향상이다. 관제뮤지컬에 투입되는 재원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는 지당한 평가기준이다. 경주시의 재원이 투입되어 경주시의 예술역량이 향상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해당 지자체에 주소지를 둔 제작단체에게 우선권을 부여해야한다. 지역 예술인들이 많이 참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지역예술역량의 향상은 지역예술인(단체)의 꾸준한 참여 기회와 맞물려 있지만, 더 큰 상승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도 필요하다. 특히 부족한 지역자원은 가능한 한 타 지역의 A급 스태프나 배우로 채우면 좋다. 이런 개방에 인색하면 안 된다. 지역예술인은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극받고 성장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족한 지역예술역량은 채워지게 되고, 지역은 보다 완전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필자는 지금까지 관제뮤지컬의 평가 기준으로 이야기의 완성도와 지역예술역량의 향상을 들었다. 이는 최소한의 평기기준이다. 앞으로 경주시는 적어도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공연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의회나 언론은 이 기준에 따라 통제해야 한다. 이런 통제기제가 제대로 작동될 때, 부실한 관제뮤지컬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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