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달 21일 경주시청에서 경주시·경주문화재단과 ‘한수원 문화후원사업 협약식’을 가졌다. 이 협약식은 한수원의 본사 이전 기념식에서 조석 사장이 발표한 ‘경주시대 종합발전계획’ 10대 생활체감형 사업 중 문화예술 육성 사업의 일환이다.
한수원은 문화후원사업을 크게 5개로 나누어 1) 문화도시 경주를 위한 메세나 사업 2) 한수원과 함께하는 문화가 있는 날 사업 3) 지역 문화예술계 지원 사업 4) 한수원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 5) 지역 문화예술행사 홍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크게 봐서 앞의 세 개 사업은 소프트웨어, 뒤의 두 개 사업은 하드웨어 관련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좋은 문화예술프로그램의 실행으로 얼마든지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하드웨어 구축만으로는 안 된다. 특히 네 번째 한수원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은 해당 하드웨어의 입지, 기능, 운영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마침 지난 19일부터 한수원 문화의 거리 조성을 위한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공모내용은 100개 정도의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한 설계 및 배치, 그리고 운영방안이다. 컨테이너 박스를 미적·기능적으로 조합한 건물들이 문화의 거리의 중심 공간이 되는데, 결국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아이디어 개진이 핵심 과제로 보인다.
필자는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경주의 문화예술 창작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건물이 공연이나 전시를 위한 공간이 되기보다는 예술인들이 창작 작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시설이 되었으면 한다.
문화예술의 생산과 인큐베이션(incubation)이 이곳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경주예술의전당이나 기타 문화예술시설에서 창작물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전례 없는 선순환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가리지 않고 수용하길 바란다. 특히 대중예술은 경주 관련 유명인사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영화의 강우석 감독이나 만화의 이현세 화백이 그렇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요즘 가장 핫한 예술장르이다. 이는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출범 초기부터 대중적인 관심을 촉발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는 예술가들의 실수요를 반영하길 바란다. 미술인이라면 개인 작업실, 공동 수장고가 필수이고, 음악인이라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터이다. 식당, 카페, 편의점 같은 편의시설도 갖추어야 입주자들이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수요가 반영되지 못한 설계는 문화의 거리의 활용도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는 국제성(國際性)을 갖기 바란다. 재능있는 외국 아티스트를 매력적인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여 우리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 좋겠다. 교류는 지역예술역량의 향상과 직결되며, 우리 예술가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은 운영의 주체 문제이다. 필자는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후에도 ‘한수원’의 이름으로 ‘직영’되길 바란다. 이는 지방정부의 열악한 재정 때문만은 아니다. 문화의 거리는 한수원이 지역 예술계와 직접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 역으로는 지역 예술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수원 문화의 거리가 어디에 조성되든 100개의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중심공간은 경주의 특별한 볼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설계와 배치, 그리고 운영방안으로 필자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좋겠다. 물론 지향점이 경주 문화예술의 체질 개선과 지역역량의 향상에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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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