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률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오른쪽 바위 위에 발자국 셋이 있다. 현재 식별이 어렵지만 이 발자국은 이 절에 있던 관음보살이 도리천에 올라갔다가 돌아와서 법당에 들어갈 때에 밟았던 발자국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관음보살이 부례랑(夫禮郞)을 구출하여 돌아올 때에 밟았던 자취라고도 한다.
부례랑 구출과 관련하여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효소왕 때 부례랑을 국선으로 삼았는데 그 낭도의 무리가 천 명이나 되었다. 어느 늦은 봄 부례랑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강원도 통천에 있는 금란(金蘭)이라는 곳에 놀러 갔다가 말갈족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부례랑의 무리들은 모두 어쩔 줄을 모르고 그대로 돌아왔으나 부례랑과 가장 친한 안상(安常)만이 혼자서 그들을 쫓아갔다. 그 소식을 들은 대왕은 크게 놀랐다.
“선왕께서 만파식적을 얻어 나에게 전해 주셔서 지금 거문고와 함께 내고(內庫)에 간수해 두었는데, 무슨 일로 해서 국선이 갑자기 적에게 잡혀갔단 말인가.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를 덮자 왕이 두려워 떨면서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니, 그 안에 있던 거문고와 만파식적 두 보배가 없어졌다.
“내가 어찌 복이 없어 어제는 국선을 잃고 또 이제 거문고와 만파식적까지 잃게 되었단 말인가!”
왕은 즉시 창고를 맡은 관리 등 5명을 가두었다. 이후 부례랑의 부모가 백률사 관음보살상 앞에 나가 여러 날 저녁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중 하루는 홀연히 향을 피우는 탁자 위에 거문고와 만파식적 두 보배가 놓여지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이 불상 뒤에 와 있었다. 부례랑의 부모는 매우 기뻐하며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저는 적에게 잡혀간 뒤 그 나라의 대도구라(大都仇羅)의 집에서 말 치는 일을 맡아 대오라니(大烏羅尼)의 들에서 말에게 풀을 뜯기고 있는데 갑자기 모양이 단정한 스님 한 분이 손에 거문고와 피리를 들고 와서 위로하여 말하기를, ‘고향 일을 생각하느냐?’ 하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임금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스님이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는 저를 데리고 바닷가로 갔는데 거기에서 안상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피리를 둘로 쪼개어 우리 두 사람에게 주면서 각기 한 짝씩을 타게 하고, 자신은 거문고를 타고 바다에 떠서 돌아오는데 잠깐 동안에 여기에 와 닿았습니다”
이 일을 자세히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크게 놀라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맞이하니 부례랑은 거문고와 만파식적을 가지고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왕은 많은 금은보화를 백률사에 보내 관음보살의 은덕에 보답한 후, 나라 안의 죄인들에게 대사령을 내리고, 백성들에게는 3년간의 조세를 면제해 주었다. 또 부례랑을 봉하여 대각간으로 삼고, 그의 부모에게도 큰 벼슬을 내렸다. 또 안상은 대통을 삼고 창고를 맡았던 관리 다섯 사람은 모두 용서해 주었다. 며칠 후 혜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나더니 17일에 또 서쪽 하늘에 나타나자 일관이 아뢰었다.
“이것은 거문고와 만파식적을 벼슬에 봉하지 않아서 그러한 것입니다.”
이에 만파식적의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했더니 혜성은 이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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