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촐하게 전시한다는 것 정도만 조용하게 보도해달라. 이번 전시도 아끼는 후배들을 위해서 출품하는 것을 결심했다”
맥주 한 잔을 기분좋게 마시면서 조희수 화백이 당부한 말이다.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경주 근·현대 미술 산증인 ‘조희수’ 초대전을 앞두고 배동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경주 서양화단의 최고 작가로서 우리 지역, 우리시대 소중한 원로예술인으로 지위와 위상, 혹은 사회적 역할은 지대한데 비해, 선생은 한사코 말씀을 아끼고 몸을 낮춘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몇 말씀이라도 옮겨 쓰려고 들렀지만 선생의 간곡한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조희수 화백의 제자들과 후배들(경주미술사연구회 수석연구원인 최용대 서양화가, 이태희 작가, 박선영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장 등)이 정성껏 준비하고 기획해 더욱 의미있는 이번 전시는 경주엑스포 내 경주 솔거미술관 제1, 2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9월25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는 경주, 양동마을, 하회마을 등의 풍경을 담은 작품 24점을 선보인다.
경주엑스포는 솔거미술관 ‘지역원로작가 초대전’의 첫 주자로 원로작가인 조희수 작가를 선정해 환란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작가 개인적 삶과 화업에 대한 조명을 통해 지역성을 토대로 한 미술을 연구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남한 최초 미술대학 ‘경주예술학교’ 1회 졸업생, 오늘에도 후진 통해 그 맥 전해지고 있어
조희수 화백은 1927년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혼란과 난국에도, 일생을 미술을 위해 투신한 작가다. 선생은 경주 서양화단의 최고 원로 화가이자 남한 최초의 미술대학인 경주예술학교(1946년 4월 설립된 남한 최초 본격적인 예술학교) 1회 졸업생으로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경주근·현대 미술사의 산증인이다. 당시 일본 유학생들의 귀국과 지역의 지주 및 재력가의 후원 등으로 향토예술인 및 전국의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운집해 문화 예술적 역량이 한껏 고조되었던 경주에서 본격적인 미술을 접하게 됐던 것.
경주예술학교 졸업 후 중앙화단에서 활동하면서 1956년 처음 국전에 입선한 것을 계기로 1970년까지 국전에만 모두 9회나 입선하고 국전초대작가로 활동했다. 1980년 경주 남산자락에 터를 잡고 1984년부터는 경북미술계를 위해 미술협회 월성지부를 결성하고 경상북도미술협회를 창립하는데 앞장섰으며 이어 포항에 미협지부를 창립하고 초대지부장을 역임한다. 이에 경북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경상북도 문화상을, 2003년에는 경주시문화상을 수상한다.
조희수 화백은 경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신라예술인의 얼이 배어있는 문화유적과 옛 정취를 즐겨 그렸다. 토속적인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지금은 사라진 옛 경주의 아름다운 경관들을 주로 화폭에 담으며 모든 그림을 현장에서 작업하는 방법을 고수했다. 양동마을과 안동하회마을을 그리기 위해 3년동안 양동마을에서 지내기도 하고, 4년여 를 경주에서 안동을 오가며 작업했던 것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미술협회 박선영 경주지부장은 이번 전시 인사말에서 “‘나는 자연의 미미한 한 구성원에 불과하며 언제나 변함없는 자연을 사랑한다’ 고 말하는 선생을 당시 사람들은 ‘초가 작가’, ‘영원한 자연주의자’로 칭하며 선생을 우직한 작가로 기술하고 있다. 조희수 화백은 지금도 남산자락의 자택 겸 화실에서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2006년 이후로는 더욱 심해진 난청으로 공식적인 행사에는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월요일마다 들르는 후배화가의 차를 타고 가볼만한 전시에는 조용히 다녀오곤 한다”고 했다.
“ ‘그림은 금방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서서히 만들어 지는 것이다. 돈을 위해서 작품 활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그림을 알고, 내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작품에 대한 작가의 자세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선생으로 하여금 신라의 찬란히 빛나는 역사만큼이나 경주의 문화부흥을 위해 화려한 꿈을 꾸었던 경주 1세대 근·현대 미술 작가들의 맥은 오늘에도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한편, 경주엑스포와 (사)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역원로작가 초대전을 마련해 경주미술사의 자료 수집과 미술교육에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