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률사 마당은 여염집 규모로 좁다. 흔히 있어야 할 탑이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에서 몇 발자국 옮기면 거대한 암벽이 가로막고 있다. 탑을 세울 자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옛 선조들은 이 상황에서도 탑을 포기하지 않았다.
주역(周易)에 ‘궁즉통, 통즉변, 변즉구(窮則通, 通則變, 變則久)’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궁즉통(窮則通)이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웅전 맞은편 암벽에 아주 얕은 양각으로 마애탑이 새겨져 있다. 비록 절 마당은 좁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든 탑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런 절묘한 아이디어를 찾았을 것이다. 옛 사람들의 기발한 생각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기단부와 초층 탑신 및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가 심하다. 높이 3.15m로 탑신은 3층으로 보이는데 각 층의 옥개석마다 3-4단으로 보이는 층급받침이 있다. 기단은 너비 1.4m에 단층으로 조성되었고, 상륜부는 보주와 용차가 생략된 듯하다. 1층 옥개석 부분에 누군가가 글자를 새겨 훼손한 자국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탑의 형식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경주지역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마애탑을 더러 볼 수 있다. 남산 탑골의 마애조상군 북면에 새겨진 7층과 9층탑, 남산 탑골 입구와 절골 사이 언덕에 있는 제2 마애조상군 중에 있는 5층탑, 최근 이곳 금강산 표암에서 발견된 마애탑, 안강읍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근계리 석불입상 광배 뒷면에 조각된 마애탑 등이 있다. 또 경주를 벗어난 지역의 마애탑으로는 대구 북구 읍내동에 있는 마애불상군 마애탑, 봉화 북지리 지림사 마애불상군 마애탑, 상원사 적멸보궁 비석에 새겨진 마애탑 등을 볼 수 있다.
전통사찰총서(15)에 의하면 백률사에는 이 외에도 방주형(方柱形) 사면보탑(四面寶塔)이 있었다고 한다. 이 탑은 백률사 입구 전면의 요사 축대 위에 놓여 있던 것으로 여러 개였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3개만 남아 동국대 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등에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탑은 높이 56㎝, 너비 31㎝의 화강암으로 된 네모난 기둥 형태의 보탑으로 각 면마다 양각된 탑신을 조각하고, 탑신에는 실제의 석탑과 동일하게 옥개석 받침을 3단으로 하고 각 옥개석 끝 부분에는 풍경을 조각하여 퍽 정교한 편이다.
대웅전에서 한 단 아래에 좁은 마당 가장자리에는 옛 건물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초석과 석등의 지붕돌 등 석재가 몇 개 흩어져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