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사업비 중 지방비 부담이 높아 재정 부담을 안고 있지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문제가 되고 있다. 향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이 점차적으로 확대되면 지방비 부담도 더욱 증가하게 돼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
게다가 국가지정문화재인 덕수궁복원정비 등의 사업은 문화재청이 직접 시행하면서 전액 국비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한 관리와 예산은 국가에서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역 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사업의 국·도비 매칭비율은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의거해 국비 70%, 도비 9%, 시비 21%로 규정돼 있다.
예를 들면 1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국가지정문화재 보수를 위해서는 국비 7000만원, 도비 900만원이 지원되고, 시비는 2100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경주지역 내 모든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사업은 경주시 신라문화융성과와 문화재과가 맡고 있으며, 매년 지방비 부담은 10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세입세출 결산에 따르면 신라문화융성과는 월성발굴, 월정교 복원 등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사업 등에서 국도비 포함 총 283억7800여만원을 지출했다.
이를 매칭비율로 구분하면 국비 198억6500여 만원, 도비는 25억5400여 만원을 지원받았고, 경주시의 부담은 59억5900여 만원이었다.
문화재과도 같은 해 대릉원 일원 등 국가지정문화재 보수 등에 344억1000여 만원을 지출했으며, 이중 국비 240억8700여 만원, 도비 30억9600여 만원, 시비는 72억2600여 만원을 부담했다.
이들 2개 부서에서 지난해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사업을 위해 총 131억8500여 만원의 시비를 지출한 것이다.
또 경주시 2016년도 예산서에 따르면 신라문화융성과는 총 사업비 488억6500만원 중 시비 102억6168만원을, 문화재과는 총 사업비 88억9100만원 중 시비 18억6711만원을 투입해야 한다. 2개과를 더하면 총 121억2800여 만원을 경주시가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매년 120억원을 상회하는 지방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를 위해 투입하고 있어 열악한 경주시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5년까지 9450억원이 투입되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매년 지방비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경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가지정문화재는 엄연히 국가 소유인데도 지방비를 부담시켜 열악한 경주시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서 “특히 경주는 국가지정문화재가 많아 타 도시에 비해 많은 지방비를 부담하고 있어 국비 지원비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매칭비율 언제부터 적용됐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지난 1964년 4월 21일 ‘보조금관리법시행령’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돼 수차례 개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중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국비 지원을 70%로 규정한 것은 1987년 이 법을 전부 개정한 시행령에서 별표인 ‘보조금지급 대상사업의 범위와 기준보조율’에 처음으로 명시됐다.
당시에는 시·도지정문화재 및 전통건조물의 보수·정비도 국비 50%를 지원하도록 했다. 1987년 시행령 개정 이후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국비 기준보조율을 70%로 규정한 이후 현재까지 변동 없이 고착화됐다.
그러나 시·도지정문화재 보수·정비 기준보조율 50%는 2005년 8월경까지 지원돼오다 2005년 8월 31일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국비 지원을 중단했다. 현재 도지정문화재 보수·정비는 국비지원 없이 도비와 시비 50대 50 매칭비율로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있다.
한편 경주지역 내 도지정문화재 보수·정비 사업은 대부분 문화재과 소관 업무로 2016년도 예산서 기준 총 사업비는 14억여원이며, 경북도와 경주시가 각각 7억여원씩 투입한다.
-시의회 국비지원 사업 예산 삭감 등 반발에도 ‘무반응’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사업 지방비 부담 가중에 따른 반발이 가시화된 것은 지난 2014년 12월 열린 경주시의회 제200회 정례회 2015년도 세입·세출 예산안 심사에서였다.
당시 시의원들은 문화재과를 상대로 한 심의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사업의 시비 부담에 대해 “국보는 문화재청에서 국비 전액을 들여 관리를 해야한다”면서 “시비를 들여서 국보까지 관리하니 경주시 재정을 어렵다는 것을 문화재청에 명확히 밝혀 지원비율을 수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 같은 지적과 함께 경주시의회는 2015년도 본예산에서 경주읍성 성곽 및 동문복원 사업비 24억2000여만원 중 시비 5억여 만원과 첨성대 보수정비 9억6000여 만 중 시비 1억9000여 만원을 삭감했었다.
2015년 12월 열린 경주시의회 제209회 정례회 2016년도 세입·세출 예산안 심사에서는 집행부를 더욱 몰아세웠다.
당시 시의원들은 ‘국가지정문화재 관리는 국비로 시행해야 하는데도 시비 21%를 부담하고 있는 반면 문화재를 떠안고 있는 시민에게 피해만 주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으로 인해 3~40년 동안 재산행사를 못해 지가가 내려가는 등의 피해에 대해 문화재청에 따져 물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불만을 드러냈다.
김동해 의원은 지난 2015년과 2016년 열린 경주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에 대한 지적을 이어가기도 했다.
김 의원은 “2015년 결산 기준 재정자립도가 18.5%대인 경주시가 문화재로 인해 지방비 부담이 심각하다”면서 “신라왕궁이라든지 동궁과 월지 복원사업 예산만 하더라도 경주시 부담이 699억원(2015년 기준)”이라며 “향후 황룡사 복원 등 본격적인 여러 사업을 하게 되면 경주시 재정으로 봤을 때는 큰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에 대한 항의 차원의 예산삭감 감행과 지적이 이어졌지만, 문화재청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주시가 상위기관인 문화재청에 시의회가 요구하는 것과 같은 항의 표시 등을 할 수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비슷한 경우에 있는 공주와 부여, 익산 등과 힘을 모아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타 시도엔 문화재 관련사업 국비전액 지원 ‘차별논란’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 지방비 부담과 관련, 심각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청이 직접 시행해 전액 국비로 추진되는 사업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 차별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문화재를 관리할 때 필요한 경비 등에 대해 문화재보호법 제51조(보조금) 제1항 ‘국가는 경비의 전부나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전액 국비로 문화재청이 시행하고 있는 사업은 덕수궁 복원정비, 경복궁 2차 복원정비, 조선왕릉보존관리 등 7개 사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문화재청 ‘2016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사업 설명자료’에서 확인됐다.
이에 따르면 경복궁 2차 복원정비 사업은 2011년부터 2030년까지 총 사업비 5400억원을 들여 254동의 건물과 초석 102동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재청이 직접 시행하는 사업으로 서울시의 지방비 부담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덕수궁 복원정비 사업은 2015년부터 2039년까지 25년간 560억원(추정)으로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역시 전액 국비사업이다. 또 궁능문화재관리 운영, 영녕릉보존정비 사업 등도 전액 국비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 복원, 익산미륵사지석탑 운영 등의 사업도 지방비 부담 없이 전액 국비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경주지역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등이 산재하고,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비 전액 사업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주는 국가적으로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타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국비 전액 지원 사업이 전혀 없다는 것은 경주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수십 년 동안 문화재로 인한 재산피해를 입고 있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그 피해가 작은 서울시의 문화재 관리와 비교할 때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또 “문화재청이 경주는 문화재로 인해 관광 수익 등 혜택도 있다는 등으로 말하며 경주시민들의 문화재로 인한 피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지정문화재 관리 사업비의 국비 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