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출출한데 그렇다고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른 오후 4시,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켰다. 웬걸, 이 채널에선 차디찬 냉면 위에 잘 익은 갈비 한 점 올리고 있고, 저 채널에서는 맛있다는 족발집을 찾아 전국을 순례 중이다. 오기가 발동해 리모컨을 계속 눌러봐도 노래 경연 프로그램 아니면 소위 먹방이다.
화면 가득 먹음직스런 음식을 줌인(zoom-in)하다 젓가락이 스윽 끼어들더니 그걸 둘둘 말아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는 걸 아주 세밀하고 자세히도 찍는다. 그 연예인은 비위도 좋다. 카메라 바로 코 앞에서 음식을 그것도 눈을 희번득거리며 입 안 가득 우물거리는 것도 대단하지만, 입 속 소리까지 온전히 전하려는 방송사의 프로 정신도 놀랍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상황에 입에 침이 안 고이는 방청객은 없다는 사실이다. 남이 먹고 있는 음식에 마치 내가 먹는 것처럼 몸에서 반응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걸 어려운 말로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이탈리아 신경심리학자 리촐라티와 그의 연구진은 매우 놀라운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대학원생 하나가 점심을 먹은 뒤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연구실로 돌아온다. 실험실에 있던 원숭이는 일제히 그 아이스크림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더운 날씨는 동물도 지치기에 마찬가지다. 그 대학원생이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부터 원숭이의 전 운동 영역(pre-motor area)과 연결된 모니터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울려댄다.
당연히 원숭이는 쳐다만 봤을 뿐 아이스크림 근처에도 가질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직접 핥지도 않았다. 그저 연구원 입 속에 아이스크림이 들어가는 걸 ‘보았을’ 뿐인데 말이다. 결론은 원숭이는 사람이 하는 행위를 보고 그대로 정신적으로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의 사람 뇌나 그걸 (간절히) 지켜보는 원숭이의 뇌나 반응 부위와 내용이 동일하게 나타난 것이다. 마치 거울을 보듯...,
‘먹(는)방(송)’은 TV를 사이에 두고 방송인과 시청자 모두 동일 음식을 동일하게 먹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음식을 먹으며 쩝쩝대는 소리나 입을 크게 벌리는 장면을 여과없이 아니, 더 과장해서까지 보여주는 모양이다.
먹는 이야기뿐일까. 야구 경기도 마찬가지다. 요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선전하고 있는 강정호 선수나 이대호 선수를 봐도 그렇다. 어쩌다 홈런이라도 치면 마치 내가 친 것처럼 어깨가 으슥해지고 대타로 나와 그것도 9회 초에 삼진 아웃을 당하면 덩달아 나도 죄지은 듯 몸이 움츠러든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우여곡절 끝에 악당을 물리치거나 어벤져스 영웅들이 지구를 공격하는 악당을 물리칠 때 손에 땀이 흥건한 건 나만이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동안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걷는 것도 놀랍지 않다. 하기야 예전에 로보캅(Robocop)이라는 로봇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목을 그 로봇처럼 돌리던 시절도 있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나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보고 난 뒤 마치 내가 강수진이라도 된 듯 우아하게(?) 행동하는 것도 다 거울 뉴런 때문이다.
거울 뉴런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곧잘 따라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타고난 듯 본능적이고 특히 아기들에게서 잘 관찰된다. 아기를 향해 혀를 내밀면 아기도 따라한다. 애기 엄마가 애기 입에다 뭘 넣어주며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리는 것도 마찬가지고.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속삭이듯 이야기하면 새로 온 사람들도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