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던 정부 공모사업들이 잠정 중단되거나 백지화될 우려가 높아지면서 시민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국립한국문학관과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원해연)가 바로 그 것.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한국문학관 추진을 잠정 ‘무기한 중단’하기로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 간 소모적인 유치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체부는 “지자체 간 배수진을 친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후보지가 선정되더라도 반발과 불복 등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며 “현 상황에서 건립 후보지 선정 등을 서두르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당초 계획을 변경,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문체부는 “국립한국문학관 후보지 공모 등 추진과 관련된 제반사항을 중단하고, 범국민적 합의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안을 차분히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국립한국문학관의 합리적인 추진 방안과 함께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대중화 지원, 지역문학관 활성화 지원, 문학진흥 정책 전담기구 검토 등 문학계와 지자체와의 협력 방안을 담은 ‘한국문학 진흥 중장기 종합대책’을 올 하반기 중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건립 부지 선정을 위해 지난 5월 3일부터 5월 25일까지 지자체를 대상으로 부지 공모 신청을 접수받아 그 결과를 7월 중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경주시를 비롯해 전국 24개 지자체가 유치 신청을 하면서 치열한 경쟁구도를 펼쳤다.
그러나 문체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국립한국문학관 경주유치 추진위원회는 상당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당초 유치 신청 지자체 간 경쟁이 불가피한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공모를 추진하면서 ‘유치 경쟁 과열’을 이유로 중단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최근 영남권 신공항 사태에 따른 후폭풍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급추락하고 있다는 것.
경주유치추진위 관계자는 “공모를 하게 되면 당연히 경쟁을 하게 된다. 국립한국문학관 선정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하면 될 일이었다”면서 “과열 경쟁을 이유로 추진을 무기한 중단하는 것은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차대한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한순희 추진위원장은 “국립한국문학관은 계획단계에서 그 속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놓고 공모를 해야 했다”면서 “구체성 없는 공모가 결국 과열 경쟁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또 “문학관 경주유치를 추진하면서 지난달 22일 세미나 등을 통해 경주가 한국문학의 본향이라는 것을 널리 인식시킨 점은 긍정적이었다”며 “국립한국문학관 내에는 향가문학관, 고전문학관, 근·현대문학관 등이 모두 들어가야 하는 만큼 그 뿌리인 경주에 유치될 수 있도록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원해연 전면 백지화 가능성 ‘점증’
경주시가 유치를 추진해온 미래창조과학부의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원해연) 건설 역시 전면 백지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 해체 산업은 전 세계적인 블루오션으로 경북도와 경주시는 원해연 유치에 사활을 걸어왔다.
세계 원전 440여 기 중 430여 기가 수명종료에 따른 해체 수순을 앞두고 있고, 세계 원자력시설 해체시장은 2030년까지 500조원, 2050년까지는 1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부는 지난 2014년 6월 원해연 설립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기획재정부에 신청했다. 그리고 당초 계획대로라면 예타 통과 후 10월 원해연 부지를 선정한 뒤 오는 2019년까지 1473억원을 투입해 7550㎡ 규모로 건립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북도(경주)와 울산, 부산 등 8개 광역 시·도의 유치 경쟁이 뜨거워지자 부지 선정을 연기한 상태다. 여기에다 미래부와 원전 운영자인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 간에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이며 사업 추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원전 소관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전해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인 반면, 미래부는 원전해체는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의 현실이므로 해체기술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원해연 건립과 관련한 예타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와 사업 자체가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것.
이는 지난달 2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이 “원해연 건립에 관한 예타를 진행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달 중순 이미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련 부처에 설명을 마치고 행정절차만 남은 상황”이라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정부는 현재까지 예타 결과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이 달 중순경 공식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정부는 원해연 부지 선정과 관련해 혐오시설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해당 부지에 떠넘기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해연을 유치해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완성하겠다는 경북도와 경주시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특히 지난 2014년 8월 25일 원해연 경주유치위원회를 결성, 시민 22만 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 미래부 등에 전달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전개해 온 경주시로서는 크나큰 상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신공항과 마찬가지로 과열된 유치 경쟁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해 원해연도 백지화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면서 “원해연이 백지화 되면 지지부진한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사업 등 경주시민들이 안고 있는 정부의 불신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