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신라라는 고대 왕조가 서기전 57년부터 935년까지 992년간 수도를 삼았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 중의 하나이다. 천년 신라의 문화유산이 산재하여 흔히 노천박물관이니 담 없는 박물관이라고들 한다. 따라서 가장 한국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경주가 으뜸이 되고 있다. 더욱이 조선시대까지의 유교문화유산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서 역사교육과 관광자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국내외 관광객이 경주를 방문하며 느끼는 경주다움을 들어 보면 신라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앞서지만 한옥이 주는 푸근함도 비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높아져 오히려 경주에서의 한옥 기대치에 대한 실망감을 스스럼없이 나타내곤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을 넘어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이 각광을 받고 전주의 한옥마을이라든지 영주의 선비촌 등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한국다움을 찾는 갈망에서이다.
금년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한옥을 보존·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의 한옥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시작하려고 하였으나 지금까지의 통계가 없는 것을 알고 어처구니없어 했다고 한다. 문화재로 지정한 한옥을 제외하고 그동안 한옥이 얼마나 지어졌고 또 사라졌는지를 모른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다. 한옥은 건축물대장에 목조건축물로 기재된다. 그런데 지어진 건축물이 진짜 한옥인지 짝퉁 한옥인지 파악할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라니 그동안 한옥에 대한 홀대를 알 만 하다.
이를 방증하듯이 국토교통부에서는 그동안 통계로는 위성사진 등을 바탕으로 2011년에 조사한 한옥 추정치만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기와지붕 등 한옥의 부분적인 특징만을 근거로 잠정한옥이란 용어로 집계하고 있다. 이 통계는 양옥도 기와지붕인 경우가 상당수 있어서 어설픈 통계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정부는 최근에서야 부랴부랴 기와지붕으로 된 집을 방문해 한옥 현황을 조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일부 조사에 그쳤지만 전국에서 한옥이 가장 많은 곳이 서울이나 전주, 안동 등이 아니라 대구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대구에는 전주의 네 배가 넘는 1만여 가구의 한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경주는 과연 어떠할까? 경주도 마찬가지로 한옥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가 없는 실정이다. 다만 고도보존특별지구로 지정된 황남동, 인왕동에 대한 건축비 지원과 도시계획조례에 따른 역사문화미관지구에 대한 기와비용 부분을 목구조와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차등해서 지원해 주는 지원책이 한계인 것이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교토 지역 등을 중심으로 민간과 지방자치단체가 합심하여 문화재급 건축물 이외에 보존할 만한 전통 가옥을 조사하여 보존하고 확산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 전역의 80여 곳을 전통 건축물 보존지구로 지정해 관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등도 정부와 지자체에서 그나라의 전통 가옥 지역을 조사·관리하고 관광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서울, 인천, 수원,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등 주요 대도시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한옥마을을 조성하거나 한옥 건축 지원책을 앞 다투어 내 놓고 있다. 경주에서도 그동안 남산동 일원과 내남면 용장리 일원, 즉 남산을 끼고 동서 기슭에 목조 한옥이 많이 들어섰고 이들이 마을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 반세기 또는 10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경주다운 한옥을 육성할 단초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식기와, 담장, 목구조 등 전통한옥의 미를 살린 제대로 된 한옥 건축을 활성화 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축비가 많이 들고 관리가 어려우며, 내부 시설 갖춤의 불편함이라는 오명을 벗어나, 우리 전통의 집인 한옥을 경주에 차곡차곡 채워 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존 한옥에 대한 조사를 통해 통계부터 만들고 한옥 육성을 위한 여러 가지 지원책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자칫 건축행위 규제로 이어져 시민의 원성을 살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을 사전에 방지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특별 지원도 이끌어 올 연구를 하자는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한옥 육성을 위해 전담 부서도 만들어 목수를 특별 채용하기도 했으며, 전주시 등에서도 전담 부서를 별도로 두고 있다. 우리가 양복을 입고 갓을 썼다 해서 한복을 갖추어 입었다고 할 수 없듯이 시멘트 슬래브로 구조를 하고 지붕만 한식 토기와를 이었다 해서 어떻게 한옥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1980년대부터 남보란 듯이 지었고 아직도 별 의식 없이 답습하고 있는 시멘트 철구조물 위에 한식 토기와를 얹은 짝퉁 한옥을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역사도시 경주의 위상에 걸 맞는 제대로 지은 목조 한옥이 처마를 이을 때, 신라 전성기의 영화가 조금이나마 비쳐 나오지 않을까.
오늘, 한옥 붐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때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도시 윈난성 리장의 리장고성(麗江古城) 같은 경주를 꿈꾸어 본다. 손자 세대에 물려 줄 경주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