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는 아킬레스라는 용맹무쌍한 전사이자 달리기 선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테살리아 지방의 퓌티아 왕 펠레우스이고 어머니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 아들을 천하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머니는 아킬레스를 스틱스강에 담그어 어떤 칼이나 화살도 그의 피부를 뚫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다만 발뒤꿈치를 잡고 담그었으니 그 부분은 약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아킬레스는 훗날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여 그리스의 승리를 눈앞에 둔 채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 사망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아킬레스에 관한 이야기들이 종종 들어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스, 훗날 그리스의 지식인 제논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라는 역설을 역시 아킬레스를 언급하며 제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명한 아킬레스는 과연 어떻게 죽은 것일까? 파리스는 화살을 잘 쏘는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과연 파리스가 아킬레스의 약점을 미리 알고 발뒤꿈치를 겨눠서 화살을 쏜 것 같지는 않다. 파리스는 형 헥토르처럼 이성적이고 냉철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국익에 엄청난 폐해를 입히는 일이지만 간단히 무시하고 그리스 왕비를 꼬드겨 도망쳐 버리는 감정적이고 가벼운 인물이니, 무척이나 긴박한 전쟁에서, 그것도 조국의 패배가 역력한 어려운 상황에서 아킬레스의 약점을 미리 파악해 급소와는 전혀 거리도 멀고 또 명중시키기도 어려운 발뒤꿈치로 화살을 겨눌 만한 인물은 아니다. 즉 파리스의 화살이 우연히 아킬레스의 발뒤꿈치에 맞았고 그 정도 화살에 아킬레스가 죽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기껏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고 사망할 수가 있을까? 발뒤꿈치는 전혀 급소가 아니다. 화살에 독이라도 묻어 있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아킬레스는 아주 건강한 전사였으니, 독 때문에 맞자마자 사망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독이 퍼지기 전 한쪽 다리를 스스로 절단해 버리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을 사람에 가깝다. 아킬레스의 사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킬레스는 사실 혈우병 환자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혈우병은 혈소판의 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지혈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질환이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리면 각별히 상처와 같은 외상에 주의해야 한다. 일반인들이라면 가벼운 상처도 혈우병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혈우병은 유전병, 특히 반성 유전의 특징을 가지는 선천성 질환이다. 반성 유전은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특징을 가졌다. 아킬레스의 어머니는 이미 혈우병 환자이거나 혈우병에 대한 인자를 가졌기에 혈우성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 형질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태어나자마자 아킬레스의 피부를 강하고 두껍게 만들어 상처가 날 여지를 없애버린 것을 아닐까. 다만 발뒤꿈치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는데, 그렇게 화살에 맞은 발뒤꿈치에서는 끊임없는 출혈이 계속되었고, 그렇게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아킬레스건이라는 표현은 약점을 뜻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도 존재하는 해부학적 명칭이기도 하다. 가자미근과 장딴지근의 건(tendon)을 합쳐 부르는 용어이다. 이 건이 칼처럼 날카로운 물체에 잘려나간다면 걸을 때 자연스럽게 발뒤꿈치를 올리는 동작이 불가능하게 되어 더 이상 보행이 안 될 수 있다. 실제 이 부위는 근육이나 지방질이 거의 없이 피부와 건으로만 구성된 딱딱한 지역이라서 외부의 손상에 받는 충격이 더 큰 부위다. 그렇지만 아킬레스건이 잘려도 평생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인대접합이라는 정형외과적인 수술은 얼마든지 다시 보행이 충분히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리스 시대의 아킬레스로 돌아가 보자. 약한 발뒤꿈치를 끝까지 보호해서 출혈이라는 위급한 상황을 마주치지 않은 채 끝까지 살아남아 자연사 했다면 어땠을까? 트로이 전쟁 후로도 수많은 전투에 용맹히 나서서 그리스의 승리를 만끽하고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겼을까? 그가 그렇게 짧은 인생을 강렬하게 살았기에 사람들은 그에 대한 기억을 더 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아무런 가정도 필요 없고 또 그 결과를 잘 알 수도 없는 법이니 말이다. 김민섭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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