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혜(53) 신라문화유산연구원 학술연구팀장은 작은 체구를 가졌다. 콧등에 걸쳐진 안경테 속에는 학구열이, 잔잔하게 웃는 미소 뒤에는 학자로서의 근성이 부드럽고도 수줍게 숨어있다. 경주의 학술발표현장과 문화현장에는 예외없이 그가 등장해 경주문화 전반에 질적인 향상을 가져왔다. 경주시는 지난 8일, 경주시민의 날을 즈음해 제28회 경주시문화상 수상자를 선정했다. 교육학술부문에는 김성혜 신라문화유산연구원 학술연구팀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학술연구라는 분야에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욕을 가졌다. 그는 또 지식욕과 함께 전문분야 지식을 더욱 가치있게 활용하기 위해서 실천하고 있다. 알고있는 것만으로, 연구한 것만으로는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는 많은 일을 했으며 추진중에 있다. 김성혜 수상자는 전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음악사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재 전문위원, 경상북도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약중이다. 경주와 신라음악이라는 주제로 여러 논문 발표와 학술적 연구는 물론, 및 경주시 문화프로그램과 콘텐츠에도 적극 반영, 활용되고 있다. 2014년 처용무를 본격적으로 경주에서 다시 복원시키고 지난해부터 2017년까지 3년간 고취대 사업을 활발하게 연구, 추진중에 있으며 신라금(신라시대 현악기) 복원을 해내 경주시에 기증 한 바 있다. 이들을 앞으로 적극 활용하고 경주시민들에게 알릴뿐만 아니라 신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간의 스토리를 열정적으로 풀어 놓았다. -“제 삶터인 경주가 연구 대상이었고 연구의 촉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수상은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학자이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면 그만인데, 드러난것이 부끄럽습니다. 미안한 것은 저보다 경주에 대해 넓고 깊게 일하고 연구한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을 앞질러 수상한 부분에서는 송구합니다” 경주와 신라를 주제로 삼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김 수상자의 삶터인 경주가 연구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연구의 촉매작용을 한 것은 경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서 1년에 한 편씩 경주와 신라 관련 논문을 써서 경주문화논총에 발표(18년에 걸쳐 18편을 발표)해온 것을 비롯해 ‘경주문화’에 편집위원으로 관여해 계속해서 글을 써 왔던 것을 꼽았다. -신라고취대 재현...지금까지 그가 연구해 온 신라악기들에 대한 연구 집약해 적용 그는 2012년 처용무를 재현하려했을때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학자적 고충과 한계에 부딪히면서 경주시 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 차제에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학술팀장 공모가 나고 학술팀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학술적 연구이외에 신라문화 전반에 관한 일을 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2년 여 딜레마를 겪던 즈음, 2015년 경주시가 제안한 신라고취대 사업에 전격 관여하게 된다. 이 사업은 지금까지 그가 연구해온 신라악기들에 대한 연구를 집약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전국 학자들을 다 동원하고 신라 복식 전문가들 등 최고의 연구진들을 꾸려, 수 차례 자문회의를 거쳐 신라고취대 고증을 했습니다. 원래는 연차 사업이 아니었으나 올해 더욱 확장시키게 됐고 자연스레 신라 악기인 신라금도 복원하게 됐습니다. 정말 보람을 느낀 일이었습니다” 신라금 이외에도 신라 악기가 다양하게 있다면서 “경주 사람이 신라 악기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잖습니까. 고취대 속에 포함된 악기복원은 물론, 고취대에 포함되지 않는 현악기 등의 신라악기들도 하나씩 재현하고 복원해야 합니다. 신라시대에 분명히 존재했던 악기를 재현하고 복원한다면 활용하는 면에서도 더욱 역사성이 부각될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그 예로서 상원사에 ‘공후’라는 악기는 이미 신라시대에 썼던 악기다. 그 공후의 실물이 신라금 실물, 실측도와 함께 일본 정창원에 남아있다고 했다. 또 그가 쓴 ‘생소병주(생황과 단소로 이중주 연주)’라는 논문에 등장하며 다수의 신라 기와와 상원사 범종에 그려진 생황 또한 사비를 들여서라도 생황의 제작 기술을 익혀 보급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이미 생황제작 기술자인 일본의 스즈키 하루오씨를 통해 신라의 생황을 만들도록 주문해 놓은 상황이다. “생황과 공후 이외에도 신라에서 사용했던 악기들을 하나씩 복원해서 연주하고 활용하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할 일이자 하고 싶은 일입니다” -“소임 다하면 언제든지 원래 연구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신라 음악사 연구(2006)’, ‘삼국시대 음악사 연구(2009)’ 등의 저서 이외에도 통일신라시대 음악연구 15편을 집대성한, ‘음악고고학, 그 연구의 활용’이라는 제목으로 작업중인 연구물을 조만간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또 신라 및 경주 관련 논문 38편 중, 발간된 신라 이외에 경주의 근현대 음악은 추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한국 음악학과 관련한 논문 26편도 주제별로 묶어서 책으로 내고 싶어요. 집대성해서 책으로 내고 다시 연구계획을 세우는 일이 너무 행복해요. 그것이 저를 생기있게 합니다” 고 하는 그는 국내 학술 대회 발표 17회, 국제학술대회 발표도 6회를 가졌다. 전 영남대학교 겸임교수,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제2회 이혜구 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장월중선 학술대회도 1회부터 기획해왔다. “경주에서 개최되는 음악 관련 학술대회는 몸을 사리지 않기로 했죠.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촌음을 아껴 산다. 꼭 만나야 할 이들은 식사 시간을 이용해 만나는가하면 특히, 에너지가 충만한 오전 시간은 약속을 잡지 않는다. 매일 오전 5~6시에 일어나 6~7시면 동국대 도서관에 간다. 그 시간은 반드시 공부에 할애한다고. 주말에도 무조건 도서관에서 보낸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지 않으면 정작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는 그다. 심지어는 부부 동반해 그 흔한 여행도 간 적이 없다. 부부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소박한 꿈일 정도다. 외조 덕도 톡톡히 본다면서 이해해주는 남편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저는 놀고 싶은 적이 없었어요.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을 보면 아마도 천성인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활동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지만 그 소임을 다하면 언제든지 원래 연구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돌아가야 할 자리는 ‘도서관’입니다. 그것이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입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