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나 저항이 없으면 발전 가능성도 없다. 공기에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가 비상할 수 없다. 물에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다. 중력이 없으면 걸을 수조차 없다. 프랑스 한 마을에서는 포도나무를 심을 때 일부러 좋은 땅에 심지 않는다… 토질이 좋은 땅에 심으면 쉽게 자라 탐스런 포도가 열리긴 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 땅 거죽의 오염된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포도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도나무를 척박한 땅에 심으면 빨리 자라지는 못해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좋은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고 뛰어난 포도를 얻는다’
차동엽 신부가 쓴 책 ‘무지개 원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의 신라라는 나라는 척박한 땅에 자라는 이 포도와 같은 처지였다. 왕을 제외한 귀족과 모든 백성이 불교에 대해 완강히 저항했던 것이다.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받아들인 후에 신라는 크게 국력을 떨치고 결국 고구려와 백제를 아우르게 된다. 서라벌의 척박한 땅에서 명품 통일신라가 된 것이다. 절 마당이 좁아 대웅전 앞에는 최근 조성된 석등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다.
사면석불을 지나 돌계단을 10여 분 오른다.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절 마당에 들어섰다.
백률사를 품고 있는 이곳 금강산은 불교의 성지이다. 그런데 절의 규모 등에서 이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차돈의 순교 당시 그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오르고 목이 날아가 이곳 금강산에 떨어져 그 유체(遺體)를 받들어 이곳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 자추사(刺楸寺)라는 절을 세웠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 금강산에는 자추사라는 절이 없다. 이곳 금강산에는 현재 백률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백률사(栢栗寺)를 자추사로 보고 있다. 당시 신라에서는 음이나 뜻이 같으면 쉽게 이를 바꾸는 사례가 많았는데, 곧 자(刺)는 ‘잣’이니 백(栢)과 같고, 추(楸)는 ‘밤’이니 율(栗)과 같은 의미라고 하여 자추사가 백률사로 명칭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억지라고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예로부터 경주에는 괴이한 풍광으로 팔괴(八怪)라는 것이 있었다. 이중 하나가 백률송순(栢栗松筍)이다. 우리의 재래종 소나무는 줄기를 자르면 다시 순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 백률사의 소나무는 줄기를 잘라도 다시 순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는 이차돈이 비록 목숨을 잃었지만 불교 소생의 계기가 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백률송순과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곳 경주 지역에 있는 대나무는 대개 가는 것뿐인데 백률사의 대나무는 유난히 굵다. 윤경렬의 『경주박물관학교 교본1』에 의하면 봄이 되어 백률사의 굵다란 죽순이 한꺼번에 올라올 때 송화가루를 뒤집어 쓰게 되면 장관을 이루어 백률송순이라는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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