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stamoch)의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소장은 그 길이가 7m에 달하고 주로 흡수기능을 가진 기다란 소화기관이다.
소장이 본연의 임무를 끝내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들을 대장으로 넘기는데, 이 소장과 대장 사이에는 길이 6-10 센티미터 정도의 자그마한 샛길이 존재하고 막힌 주머니로 연결된다.
대장의 길이는 소장보다 훨씬 짧은 2m 정도지만(인간의 평균키가 170cm도 안되는 것에 비하면 2m도 어마어마하게 긴 편이다.) 그 굵기는 소장의 3cm보다 두배 정도나 큰 5cm에 이른다. 이런 큰 부피를 가지는 장기들 옆에서, 마치 새우처럼 작고 짧은 이 장기는 과연 무엇일까?
충수(appendix)다. 오른쪽 하복부 표면에 가깝게 위치한 해부학적인 특징상, 수술로 접근하기가 무척이나 쉬운 장기이기에, 복부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의들의 집도식(執刀式)이라고 하는 수련생활 첫 수술은 보통 이 충수돌기 절제술로 시작한다. 급성복통을 유발하기도 하며 내버려두면 복막염으로 커질 수도 있기에 응급질환 중 하나이고 우리가 흔히 맹장염이라고 라고 말하는, 이 ‘맹장’의 정확한 명칭은 충수이다.
충수의 기능은 뭘까? 어떤 역할을 하길래, 소장과 대장의 경계부분에 그렇게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걸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사실 충수의 기능은 없다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괴담일까? 어느 동네 목욕탕에 가면 동네 사람들의 오른쪽 하복부에는 하나같이 다 수술자국이 있는데, 그것은 그 동네 병원의 의사가 주민 전부에게 충수절제술을 했다거나, 제왕절개술시 기왕 배를 여는 김에 별 이상증상도 없지만 의미도 없는 충수돌기까지 같이 제거하자거나, 체중감량이 중요한 운동선수들이 조금이라도 체중을 줄이기 위해 맹장을 제거했다는 소리까지도 간혹 들릴 정도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가 식생활이 바뀌면서 충수가 기능을 잃고 흔적기관(vestigial organ)으로 남게 됐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말, 토끼, 소 등의 초식동물은 충수가 훨씬 길고 육식동물 등에서는 충수가 없는 동물도 있다. 사람과, 그리고 사람과 아주 가깝게 생활하는 개는 충수의 길이가 서로 비슷하게 작은 편이다.
즉 사람이 과거에는 초식동물처럼 풀이나 나뭇잎, 뿌리, 열매 등의 식물성 음식만 섭취하다 육식을 시작하게 되면서 충수가 점점 쇠퇴하고 현재는 기능은 상실한 흔적만 남은 기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 몸에는 충수 외에도 과거에는 있다가 현재는 그 기능이 없어진 흔적기관이 여러 개 존재한다.
그렇지만 충수의 역할은 여전히 있다. 충수는 대장 안에 있는 세균의 개체수가 감소했을 때 우리 소화기관이 필요로 하는 이로운 정상장내 세균들을 배양하는 기능이 있다. 이들이 있기에 체내에는 항상 일정한 수의 세균들이 분포하게 되고, 따라서 외부의 해로운 세균들의 추가 진입을 막아내는 역할, 즉 면역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또 소장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수분과 염분을 흡수하고 근육층을 이용해 내용물을 점액과 섞어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기능들이 눈이 띠게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180년전이기도 하지만 다윈도 충수의 역할을 없다 라고까지 표현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없어도 있는 듯, 있어도 없는듯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인류의 선조들이 벌거벗고 소수가 모여서 주변의 천적들을 피해서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까마득히 먼 옛날에는 틀림없이 인간은 육식보다는 채식에 가까웠을 거다. 별다른 도구도 없이 사람보다 빠르면 더 빨랐지 느리지 않는 그 모든 다른 동물들을 사냥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테니까. 그때에는 분명 인간의 충수가 다른 초식동물들처럼 길고 커다랐을 텐데, 그러면 이런 흔적기관이야말로 또다른 진화론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누군가가 짧은 시간에 각각의 종을 창조했다면 기능이 필요없거나 적은 기관을 특별히 과장스럽게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김민섭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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