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놓고 보면 다 아쉽지요. 수작업으로 하니까 매 번 미련이 남지요”
경주 문화의 거리 내 노서동 ‘삼선방 표구사(정재욱 대표, (58))’ 에는 주문 의뢰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 소품서부터 고급 작품 의뢰까지 다양하다.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고수’라고 한다면 정 대표는 이에 합당한 인물이다. 40년 넘게 온전히 수작업인 정통 표구일을 우직하고 고집스레 해 온 장인이기 때문이다.
그 열정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지난달 경북도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표구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 3일 정 대표를 그의 오랜 작업장인 삼선방에서 만났다.
정 대표는 대구에 있는 표구사에서 정통표구 기술을 익힌 뒤 22세때 5~6년째 운영되고 있던 경주 삼선방으로 와 37년째 같은 장소인 이곳에서 훼손된 서화류를 복원시키고, 의뢰인의 작품을 정성껏 표구하는 등 정성과 신용으로 외길을 걸어왔다. 문화재급 화첩이나 서첩, 탱화 영정 등의 복원 일도 해 온 정 대표는 경북 경산시 출생이다.
그는 고향의 선배가 대구의 표구점이 밀집된 골목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터에 호기심을 느껴 이 일에 입문하게 된다. 70년대 중반 18살의 나이에 처음에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어서 숙식을 하면서 월급도 없었던 표구일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쉬는 날도 없었습니다. 일찍 마쳐봐야 밤 12시 반 정도였지요.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일을 했습니다. 당시 또래 나이인 친구들 6명이 함께 춥고 어려웠던 시절, 이 일을 배웠는데 친구 몇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그때 일을 같이 배우고 울고 웃었던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저 자신을 다그칩니다”며 동고동락하며 일을 배우던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정 대표는 잠시 회한에 잠겼다. 그는 이후 몇 군데 표구집을 옮겨다니며 선후배 서열이 엄격했던 당시, 혹독하게 일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도 일을 어디서 배웠는지의 내력은 족보처럼 따라다녀서 정 대표의 이력만으로도 표구계에서는 베테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정 대표가 표구일을 하면서 근성과 자존심이 강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후 정 대표는 4~5년 대구서 기술을 배워 22세때 경주 삼선방에 기사로 오게 된다. “제대하고 그 다음날로 예비군복을 입은 채로 경주로 왔습니다. 당시 주인은 표구계에서 인정해주는 뛰어난 강덕중 사장이었습니다. 당시는 표구는 물론, 목공일까지 다했는데 저를 인정해주고 많이 격려해준 분이었지요. 지금도 목공일을 알고 표구 작업을 하므로 보다 나은 작업을 할 수 있죠” “그리고 삼선방을 인수한 것이 30세때 였지요. 결혼은 그 이듬해 했고요. 그만둔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보면 천직같아요(웃음)”
표구 작업을 할 때 재료비 차이가 심하지만 양심껏 좋은 재료를 사용해 표구를 하고 있다는 정 대표는 “오래 하다 보니 믿고 맡기시는 것 같습니다. 정직한 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이 얄팍한 기술로 아이들 키우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면서 몸을 낮춘다.
정 대표에겐 고급 작품 의뢰가 많다. 지금도 병풍 하나 만드는데도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재료비가 상승해도 한결같이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 고수로서 오늘까지 작업을 이어온 배경이다. “사실 저는 비싸게 받습니다. 장난을 치면 안되는 일이잖습니까”하고 반문한다.
“울산 반구대 탁본 작업시 너무 커서 탁본 배접이 어려워 박물관 내에서 작업을 했던 일, 경주 시내 일원의 석물이나 비문 170여 기 등의 배접 작업을 한 일, 1990년 초반에 경주국립박물관 학예사와 동국대 고고미술학과 학생들과 함께 수년에 걸쳐 칠불암 마애석불, 단석산 마애불상 등의 작업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합천 해인사 성보박물관 개관시 영정, 탱화, 병풍 등의 표구 작업을 숙식을 하면서 작업했던 것도요. 또, 허허당 스님이 주문한 12폭의 엄청난 크기와 폭의 백만동자 대병풍 작업 등입니다”면서 기억에 남는 작업들을 꼽았다.
경북도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표구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획득한 것에 대해서 정 대표는 “표구하는 사람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죠. 햇수로는 6년 만에, 4번 탈락하고 5번 도전 끝에 성공한 것입니다. 만만치 않았고 떨어졌을땐 자존심이 상했지요.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예술대학교에서 오로지 실기와 면접으로 시험을 봤고 경북도내 최초 합격자 타이틀을 얻었죠. 타이틀을 얻고 보니 더욱 자만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직하게 일 할겁니다” 고 했다.
그는 덧붙여 “고서화 등을 다룰때 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저보다 뛰어난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40년 넘게 일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작품도 부식의 정도나 상태가 다 다르므로 특히 숙달된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지요”고 한다.
정 대표는 일을 배우면서부터 노하우나 방법 등을 기록해두고 그만의 기술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정통으로 일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술을 찾아야 한다며 고수를 찾고 배워서 견문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자만의 기술로는 발전이 없고 수작업이므로 한계가 온다는 것.
정 대표는 “경상북도에 문화재급 일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노력해서 자격증을 딴 대구시의 장인 2명과 함께 법인체를 구성해 지방의 문화재 복원 등의 일을 보란 듯이 해보는 것이 꿈입니다. 문화재급 일은 혼자서 하기 버거우므로 두 세 사람이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며 소박한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