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김유신 장군을 지키고 있다. 십이지신상은 방위나 시간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서아시아에서 점성술로 발달한 황도 12궁이 인도에서 불교 등을 통해서 중국으로 전래된 후, 중국적 성격이 강한 12마리의 동물과 결합하면서 한(漢)을 거쳐 수(隨)에 이르는 동안 십이지신상으로 구체화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 십이지신이 약사여래의 권속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십이지신상을 묘의 호석에 조각한 것은 통일신라 묘제의 고유 양식이다. 중국에는 묘실 내에 십이지신상을 만들어 넣은 것은 있어도 봉분 주위에 조각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묘의 봉분 주위에다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배치한 것은 성덕왕릉(제33대, 재위 702∼737) 이후로 보고 있다. 이 십이지신상은 완전 입체상으로 독립되게 만들어져 방위에 따라 봉분 둘레에 두었다. 그러나 이 십이지신상은 왕릉을 조성한 이후에 보완한 것이다.
김유신장군 묘의 호석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은 그 크기가 각각 세로 96㎝, 가로 61㎝이다. 이 상들은 모두 문관복을 입고 발을 양옆으로 벌린 정면상이나, 몸과 머리는 오른쪽으로 향한 측면상이다. 얼굴은 방향에 따라 해당되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손에는 삼지창이나 검 또는 도끼 등의 무기를 들고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긴 저고리를 허리띠로 묶어 늘어뜨린 옷을 입고, 밑에는 바지를 입었다. 길게 늘어진 소매는 팔뚝에서 묶여져 있고, 옷자락이 늘어진 부분이 바람에 젖혀진 듯 풍성한 옷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상 전체의 신체 비례가 알맞고 팔다리의 표현이 자연스럽다. 또한 각 상의 동물형 얼굴은 그 특징을 살려 세부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현존하는 다른 능묘의 십이지신상은 대부분 무관복을 입고 있는 것과는 달리 문관의 복장을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성 시기는 조각 기법으로 미루어 묘를 축조한 이후인 8세기 후반 경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십이지신상은 왕릉에만 있을 수 있다는 가설 아래, 김유신장군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봉된 시기인 제42대 흥덕왕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능묘 주변에서는 이밖에도 12방위에 따라 매장된 납석제 십이지신상 중 4개의 상이 발견된 바 있는데 그 조각 솜씨가 뛰어나고 무관의 복장을 하고 있으며, 양식적으로는 8세기 중엽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덕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이외에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능묘로는 능지탑, 구정동 방형분, 원성왕릉, 경덕왕릉, 헌덕왕릉, 흥덕왕릉, 진덕여왕릉 등이 있다. 그리고 왕릉으로 추정되는 황복사지의 동편에도 십이지신상 일부가 있다. 납석제 십이지신상은 이곳 김유신장군 묘역 이외에 헌덕왕릉 주변에서도 6기가 발견되었으며, 왕릉으로 추정되는 용강동 고분 내 현실에서는 청동제 십이지신상 7구가 발굴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