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과 황룡사 등 8개 유적 전체를 아우르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 종합기본계획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로부터 일단 제동이 걸렸다.
세계유산에 대한 훼손 등이 언급되면서 이에 대한 보완·수정 후 재보고하라는 결정을 받은 것.
문화재청과 경주시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열린 문화재위원회 제1차 합동분과(사적·건축·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 종합기본계획에 대해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합동분과위원회는 보고된 계획에 대해 미비점이 많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하고 수정·보완 후 재보고할 것을 의결했다.
특히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 내 건물 복원 계획에 대해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종합기본계획에는 월성의 문지·성벽·건물지 등 복원, 동궁과 월지 서편지역 복원, 첨성대 주변 전시관 건립, 황룡사 강당과 승방 복원 등 8개 핵심유적에 대한 단계별 사업추진계획을 담았다.
또 이들 8개 유적을 통합하는 동선, 경관, 시설물, 활용방안 등에 대해 보고했다. 이에 대해 한 문화재위원은 “세계유산지구에 건물을 복원할 때는 등재 시점부터 세계유산위에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발굴을 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마당에 건물을 짓는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초 기본계획에는 세계유산에 대한 개념 인식 자체가 없었다”며 “이번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면 경주역사지구는 진정성을 잃어 세계유산 삭제 후보 1순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것.
-세계유산지구 내 건물복원 강조에 지적 나와
이번에 논란이 된 ‘신라왕경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은 전문성과 지속성이 요구되는 8개 핵심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3월 착수보고회를 시작으로 문화재위원회와 신라왕경사업 자문위원회 자문 등을 통해 수립한 계획을 시민설명회 등을 거쳤고, 이번에 합동분과위원회에서는 첫 보고 자리였다.
이처럼 문화재위원 등의 자문에도 불구하고 지적이 나온 것은 종합기본계획이 세계유산에 대한 복원이 강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계획안에는 월성, 황룡사, 동궁과 월지, 대릉원 일원, 월정교 등 대부분 사업에 대해 복원 계획을 포함했다.
이에 따라 월성 발굴 등 핵심 사업이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개별 사업이 아닌 8개 핵심 사업 전체에 대한 계획으로 보면 마치 복원을 위한 계획인 것처럼 내비쳐졌다는 것.
경주시 등도 이날 보고에서 세계유산에 대한 보완점이 부족하고, 복원을 강조한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월성 등 단위사업에 대한 발굴과 복원을 위한 고증 작업이 진행 중에 있지만 세계유산지구 내 건물복원에 대한 대안은 없었다”면서 “전체적인 계획을 보면 복원이 강조된 것은 맞지만 단위사업별로 발굴과 자문을 통해 고증을 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적 사항을 반영해 계획안을 보완한 뒤 오는 9월경 다시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하겠다”면서 “핵심유적 복원 사업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들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 한 점의 의문 없이 최대공약수를 모아 추진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논란 사전 예견되기도
그러나 이 같은 논란은 이미 예견되기도 했었다. 본지는 지난해 4월 세계유산지구 내 건물은 추정 복원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보도한 바 있다. (본지 1188호 1면 참조)
당시 보도에는 1964년 5월 제2차 국제 역사적 기념건조물 건축가 및 전문가 총회에서 승인된 ‘기념 건조물과 유적의 보존, 복원을 위한 국제헌장’ 즉 베니스헌장에 명시된 규정을 들었다. 이 규정에는 유적의 복원과 관련해 ‘추측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복원은 멈추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기념건조물의 복원 전과 후에는 해당 기념건조물에 대한 고고학, 역사학적 연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베니스헌장은 1965년 창설된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의해 채택됐고, 국제사회는 이를 유적의 보존과 복원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결국 세계유산지구 내 건물 등의 복원은 명확한 고증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신라왕궁 등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복원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과 경주시 등은 세계적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충분한 고증을 통해 복원하는 것은 인정하고 있는 추세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유럽 등이 중심으로 구성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설득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입장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석조 중심의 서구문화와 목조 중심의 동양 문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면서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충분한 설명을 통해 설득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