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landmark)란 국가나 도시 또는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시설이나 건축물로서 멀리서 보면 위치파악에 도움이 되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대형 건축물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유수의 도시는 고유의 랜드마크를 만들어 국가의 위용을 자랑하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드높여 왔다. 지금도 이러한 건축물은 관광상품으로 톡톡한 몫을 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앞 다투어 건설 경쟁을 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역사적인 것은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기원전 2560년),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기원전 490년), 이탈리아 콜로세움(80년),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537년), 멕시코 팔랑케의 비문의 신전(683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1345년), 일본 히메이지 성(1346년),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1372년),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1651년), 인도의 타지마할(1653년), 러시아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1560년) 등이 있다.
근대의 랜드마크로는 영국 런던의 빅벤(1858년),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1876년), 독일의 쾰른 대성당(1880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324m, 1889년)과 개선문(50m, 1836년) 등이 있으며, 현대에 들어 와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39m, 1931년),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443m, 1931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티 센터(1998년), 영국 30세인트 메리 액스(180m, 2003년), 마카오 그랜드 리스보아(258m, 2007년), 아랍에미레이트의 부르즈 할리파(828m, 2009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2010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알베이트 타워(601m, 2012년), 중국 상하이 타워(632m, 2015년)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의 숭례문(1396년), 서울의 N서울타워(1975년), 63빌딩(1985년), 롯데월드타워(555m, 일부완공)와 부산의 부산타워(120m, 1973년)가 대표적이며, 경주에서는 보문관광단지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경주타워(82m, 2007년)와 중도타워(81m, 2015년)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랜드마크 가운데 근대에 만든 것으로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도시 파리의 에펠탑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에펠탑은 센강 서쪽 강변의 상 드마르흐 고원 끝자락의 마르스 광장에 위치하며,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었다. 이 탑을 만들 당시 지식인들은 우아한 파리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골덩어리라고 온갖 비난을 쏟아 부었다. 유명한 소설가 모파상은 파리 어디를 가나 눈에 들어오는 에펠탑의 모습이 흉물스럽다며 아예 시내에서 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인 에펠탑 내부의 레스토랑을 택하여 늘 식사를 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연간 7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에 3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우리가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상상해 본다면 에펠탑이 차지하는 랜드마크로서의 가치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신라의 랜드마크는 무엇이었을까? 예술적인 빼어남으로 봐서는 석불사(석굴암)와 불국사(751년), 그리고 첨성대(632-647년)를 들 수 있으나 높은 건축물을 든다면 황룡사 9층목탑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370여 년 전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세운 이 탑은 상륜부까지 높이가 82m에 이르러 서라벌 왕경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국가의 상징물이었다. 신라 3보로서의 가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신라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주변국 9개 나라 즉,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을 1층부터 9층까지 새겨 넣고 외부의 적을 이겨 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으니 옛 신라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탑을 대하였다.
이러한 이념을 이어 받아 황룡사 9층목탑을 본으로 하여 경주 보문단지에 세운 것이 경주타워(투각형)와 중도타워(실물형)이다. 두 타워 모두 철골 구조를 기본으로 콘크리트를 곁들여 건립하였으며, 눈으로 보기에는 목탑의 외형을 투각과 실물로 각각 잘 표현하고 있다. 지난해에 중도타워가 완공되자 두 타워의 연을 맺는 혼례식도 성대하게 치렀으나 정작 이들 두 타워를 찾는 관광객 수는 미미하여 이용도면에서는 아직까지 아쉬운 점이 많다.
이제 앞으로 100년, 200년을 내다보며 새로운 경주타워를 꿈꿀 때가 되었다. 파리의 에펠탑을 모델로 하여 철골 구조의 거대한 다보탑을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굳이 다보탑 모양으로 하자는 것은 종교시설물의 의미를 떠나 신라 장인의 기교를 가장 잘 나타낸 건축물의 하나로 우리 화폐의 10원짜리 동전에도 등장하는 상징성에서 이다. 또한 다보탑의 원형을 다소 변형하여 철골화 하더라도 에펠탑 보다는 아름다운 조형물이 될 것이란 기대이다.
철골의 조달은 일제 강점기에 건설한 이래 2018년이면 폐쇄되는 경주구간의 동해남부선과 중앙선 폐철로의 부재를 이용하자는 안이다. 우리는 그동안 실크로드라는 동서 교역로의 동단으로서 경주를 자리매김 해 왔다. 근현대의 대표 교통수단으로 이용한 철로를 다시 재활용하여 길에 담긴 의미를 영원히 남기면서 앞으로는 다시 하늘로 이르는 길, 타워에 스며들게 하면 어떠할까? 높이는 경주남산(금오봉468m, 고위봉494m)의 해발 높이와 키를 나란히 한다면 경주의 어디에서든 볼 수 있으리라.
소요 되는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경주시민들의 모금을 기반으로 한국 철강산업의 대표 기업인 포스코와 경주의 유수 기업체 등이 힘을 보태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낸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울러 적당한 장소로는 경주평생학습센터 남쪽의 사정동, 탑동 일원이나 형산강(서천) 서쪽의 서악동 등 시가지와 문화유적이 인접한 곳이 좋을 듯하다. 아예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교각을 둔 형태로 강의 위쪽으로 쌓아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리라.
이러한 꿈을 꾸고 계획을 구체화하여 실행에 옮기는 데는 경주 지도자들의 결단과 시민들의 의지가 관건이다. 기존 문화재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나 주변 경관을 걱정하는 원성만 높인다면 경주는 영원히 이 모양, 이 모습으로 과거로만 향하는 도시가 되고 말 것이다. 매년 인구가 줄어들고 관광객의 증가가 더딘 현실 속에서 역발상도 대안이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