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지만, 5월 21일은 ‘문화다양성의 날’이다. 유엔(UN)이 2002년 총회에서 매년 5월 21일을 ‘대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로 지정하였고, 우리나라는 2014년 제정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항에 문화다양성의 날을 명기했다.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이하여 ‘문화다양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문화다양성의 어원은 라틴어의 ‘디베르수스(diversus)’인데 이는 ‘다른 방향의’, ‘대립된’이란 뜻이다. 이 어원을 참고해 정의하자면, 문화다양성은 한 시대나 한 국가의 문화적 동화나 통합을 지향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차이를 드러내며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문화다양성은 다양한 문화들이 단순히 ‘존재’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차이들이 존중받아 ‘상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문화다양성이 화두가 된 건 최근 반세기 전부터로, 이른 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문예사조는 근대의 이분법적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문화다양성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쯤에서 경주의 문화다양성 현황을 살펴보자. 전국적으로 등록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섰고, 경주시에도 8천명 이상의 외국인이 등록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경주시 인구의 3%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들을 위한 민족과 인종 차원의 다문화정책이 시급하다. 현재는 평생학습문화센터의 다문화팀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은 결혼이주민을 위한 현지적응 프로그램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인 문화다양성 실현이 필요하다. 특히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외동과 성건동, 그리고 자연발생적으로 외국인 거리가 조성되고 있는 황오동을 주목해야 한다. 엘에이(LA)의 코리아타운이나 한국의 차이나타운처럼 자국과 타국의 이질적인 문화가 ‘안전하게’ 공존하도록 문화 하드웨어를 장착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가 지향할 문화다양성은 상기와 같은 피부색의 다양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성(性)적 소수자, 심신이 불편한 장애인도 중요한 문화다양성 인자다. 노인, 어린이, 여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들을 흔히 문화소외자라고 부르는데 여기엔 문화적 불균형이 내재해 있다. 문화들이 서로 차이를 드러내며 공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에는 게이나 레즈비언이 편견 없이 활동하고 있는가? 장애인의 ‘있는 그대로의 장애’를 전제로 한 프로그램이 있는가? 아직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천에는 게이가 MC를 보고, 여러 성소수자가 게스트로 참여하는 팟 캐스트 프로그램 ‘여섯 빛깔 무지개’가 인기를 끌었고, 서울 성북에는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의 동행 프로그램인 ‘어떤 아트 투어’가 화제를 모았다. 경주는 보수적이고 다소 폐쇄적인 곳이라 문화다양성의 실현 기반이 취약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경주는 과거 개방과 교류의 아이콘이었다. 신라는 박, 석, 김, 이렇게 삼성씨(三姓氏)가 돌아가며 왕위에 올랐고, 여왕을 세 명이나 배출할 정도로 오픈 마인드를 가진 국가였다. 또한 인접국가인 당나라, 왜와의 교류뿐 아니라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문화다양성 국가였다. ‘폐쇄’보다는 ‘개방’의 유전자를 가진 자들이 바로 경주인이다. 모든 문화정책은 문화다양성의 실현에 다름 아니고, 문화융성은 그 결과다. 종(種)다양성이 생태계의 안정을 담보하듯 문화다양성도 마찬가지다.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이하여 5월 21일 하루 정도는 문화다양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내년 이맘때는 경주에도 문화다양성 주간이 선포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문화다양성 국가의 후손들이 꼭 해야 할 일들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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