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12대손이며, 마지막 왕인 구해왕(구형왕이라고도 한다)의 증손이다. 조부인 김무력은 벼슬이 각간으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키기도 했다. 부친은 소판 벼슬의 김서현으로 대량주 도독 등을 지냈다. 모친은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갈문왕의 손녀 만명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에는 장군의 태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이 *만노군 태수로 있을 때 경진일 밤 화성과 토성 두 별이 자기에게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만명도 역시 신축일 밤에 동자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잉태하여 20개월 만에 유신을 낳았다.” 불세출의 영웅은 태어날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한 마리 사슴이 이끄는 사자들의 군대보다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사슴들의 군대가 더 위협적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왕이 한 말이다. 유약한 지휘자가 이끄는 용감한 병사들보다 한 사람의 탁월한 지휘자를 가진 군대가 더 위력적이라는 말이다. 알렉산더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신념을 가진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지휘자인 사자가 휘하의 부하들을 사자로 만들어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사자들의 군대’가 된다면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오래 전 신라에 그런 장군이 있었으니 바로 김유신 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조에는 삼한일통의 명장 김유신이 어떻게 사자와 같은 용맹한 군사로 부하들을 만들었는지 그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김유신이 백제 군사를 쳐부수고 돌아와 미처 왕을 뵙기도 전에 백제 대군이 또 변경을 침범하였다. 이에 왕은 유신에게 명하여 다시 출동하게 하였다. 그는 집에도 들리지 못한 채 전쟁터로 달려가서 적을 쳐부수고 2000명의 머리를 베고 돌아와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또 다시 백제 군사가 침범한다는 급보가 있었다. 왕이 사태가 급박하여 다시 유신에게 명하였다.
“나라의 존망이 공의 한 몸에 매었으니 수고를 꺼리지 말고 부디 이를 처리하라.”
이에 유신은 또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다시 서쪽으로 떠나게 되었다. 장군이 자기 집 문 앞을 지날 때 온 집안의 남녀가 나와 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으나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또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기 집 앞을 50보 쯤 지나서 말을 멈추게 한 후 자기 집에 가서 장수(漿水)를 가져오라 하여 이를 마시며 ‘우리 집 물이 아직도 예전 맛과 같다.’고 하였다. 이에 군중이 이르기를 ‘대장군도 이러한데 우리가 어찌 골육(骨肉)을 이별하는 것을 한으로 삼겠는가?’ 하였다.”
이렇게 해서 신라군은 사자의 지휘를 받는 사자 군단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신라군은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당시 세계 최강의 당나라까지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만노군은 당시 고구려와의 접경으로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지역으로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 일대에는 1983년 조성된 생가와 유허비, 태실뿐만 아니라 김유신과 관련된 자취들이 많이 남아 있다. 생가의 동북쪽 산비탈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연보정이라는 우물이 있으며, 김유신이 무술 연습과 말달리기를 했다고 전해오는 치마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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