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양미술관이 아시아적 정체성과 서구적 근대성의 틈에서 방황했던 자전적인 갈등과 충돌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승화시켜 온 원로작가 전광영 작가를 초대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계의 중추 역할을 해 온 중진 원로 작가들을 지원하는 ‘우양작가시리즈’의 일환으로 원로작가 전 작가의 초기작품부터 대형 설치작품까지 반세기 동안 펼쳐온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회고전을 오는 9월 30일까지 개최하는 것. 우양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포함해 총 60여 점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3년 만에 국내에서 개최하는 개인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오랜 해외 활동 중에도 국내화단과의 조우를 그리워했다는 작가는, 6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선보이기 시작한 추상표현주의 작업 중 미공개작 8점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작품 중 현존하지 않는 10여 점을 재제작 하는 열정을 더해 작가의 시기별 작품을 골고루 선보이고 있다. 2014년 이후 감각적인 색채의 신작과 고서한지로 포장된 유닛(unit)이 아닌 색점(dot)으로 구성된 새로운 시도의 작품 등 12여 점의 국내 미공개 신작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1944년 출생인 작가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목도하고 도제식 미술교육을 피해 69년 도미, 당시 2차 대전 이후 만연했던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움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인종차별, 물질만능주의적 자본주의의 현실속에서 이방인으로 혼돈의 시기를 겪고 77년 다시 귀국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통해 서구적 모더니티의 ‘시각적 차용’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The 전광영’ 이라 불릴 수 있는 작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기를 탐하게 된다. 초기작인 7-80년대 추상작업은 붓질을 통한 추상의 구현이 아닌 독특한 작업과정을 통해 나타난 결과물이다. 이 시기 작품들은 이후 등장하는 가늘고 길쭉한 유닛과 삼각형의 유닛의 집합을 추구하게 된 심미의식의 기저를 형성하게 해주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추상표현주의적 작업을 과감히 접고 94년부터는 ‘한지로 싸서 끈으로 동여맨 삼각조각’으로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아시아적 혹은 한국적인 정체성에 대한 모색이 반영된 것으로, 자연관과 인생관이 회화관과 일치해야 함을 중요시했던 문인화의 특성이 작가의 사유세계에 엿보인다.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자주 드나들던 한약방에서 본 한지에 싸인 약재봉지들에 대한 섬광 같은 끌림에 주목하고 한지, 고서종이, 노끈, 향토적 색, 아련한 빛, 명상하듯 반복적인 행위 등을 통해 비로소 그간 추상작품에서는 좁히지 못한 근원적 노스텔지어를 해소하는 국면을 맞게 된다. 이후 2000년대에 걸쳐 삼각 유닛을 재배치하고 구조화 하는 다양한 시도로, 평면회화도 부조조각도 아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극대화되는 시기로 캔버스 자체를 변형시키거나 고서한지의 색채에서 나아가 오미자, 구기자, 치자, 쑥을 태운 재 등을 사용한 자연염색으로 다채로운 색에 대한 연구가 시도됐다.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평면적 부조 속에 심연의 웅덩이와 같은 공간감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나아가 3차원의 대형 입체 설치 작업들로 본격적인 ‘공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이어 점차 4차원 이상의 시간성과 역사성까지 시각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해진다. 2010년 이후부터 삼각형 스티로폼을 싸온 한지의 색을 이국적으로 발전시켜, 초기 추상작업을 통해 추구하던 빛과 색을 향한 자유로움을 다시금 실험한다. 꿈속을 떠다니듯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영원히 충족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의 알레고리를 ‘Dream’, ‘Star’, ‘Desire’ 등 부제의 작품들을 통해 풀어냈다. 끊임없이 노끈으로 개체를 묶어내는 제작방식을 보건대, 작가에게 작품은 잊혀져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화폭 위에 붙들어 매어 두는 저장장치가 아닐까. 가볍지만 질긴 종이에 담긴 무거운 작가의식을 통해 보편적 미의식 속에 담긴 특수성을 다시금 고찰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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